* 록히드 파헤친 대쪽 검사 /알리바이 조작방지 위해 빈수첩 압수
하기도/특수부 수사검사로 총장까지 역임 일본은 정치와 관련된 스캔들
이 터지면 터질수록, 그 규모가 클수록 대쪽 검사가 출세한다. 요시나
가 유스케(길영우개.63)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요시나가 총장은 사건속에 살았고, 사건때문에 출세한 검사다. 일찍이
76년 다나카(전중각영) 전총리의 록히드 스캔들 수사시작땐 동경지검
특수부 부부장겸 주임검사로, 올 2월 최고재판소 확정판결땐 검사총장
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일정계를 강타한 뇌물사건들인 맥도널 더글러스-
그루만 사건, 자민-사회당 의원을 기소한 닛쓰(일통)사건, 다케시타(
죽하등)총리를 사임케 한 리크루트 사건 등 수많은 정치스캔들을 담당했
다. 그는 철저히 수사한다. 어떤 사건에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수
첩까지 압수한 바있다. 이에대해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피의자가
추후 수첩에 거짓사실을 적을수도 있으므로 "라고 설명했다. 사린가스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옴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음에도
"총장이 요시나가이므로 확실할 것"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미스터 특수부 요시나가는 총장자리에 접근할수록 어려움에 처했다.
검사총장은 수사검사보다는 법무성 형사국장-사무차관을 거친 법무 관
료파 들이 주로 차지하기 때문이다. 검사총장은 정계와 교섭해 예산을
따내야 하므로 아무래도 법무성 출신이 적격이다.요시나가 이전 검사총장
4명은 모두 법무관료파 출신이었다. 91년 요시나가가 도쿄지검 검
사장에서 히로시마(광도) 고검장으로 좌천되자 "이제 총장되기는 틀렸다
"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정계 스캔들을 계기로 다시 재기한
다. 92년 사가와규빈(좌천급변) 사건때 뇌물 5억엔을 받은 가네마루
신(김환신) 자민당 전부총재를 검찰이 20만엔 약식기소하자 일전국에
서 비난이 빗발쳤다. 검찰청 간판은 페인트세례를 받았고,참의원의원이던
현 아오시마(청도행웅) 도쿄도지사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정계에
대한 배려보다 신뢰회복이 급선무란 위기감에서 검찰은 요시나가로 상징되
는 원칙주의 를 선택했다. 결국 대쪽검사 요시나가는 총장이 약속
되는 2인자 자리 도쿄고검 검사장이 됐다. 93년12월 마침내 검사총
장이 된뒤 "엄정공평, 불편부당을 지키겠다"고 천명했다. 두 목표는
사가와규빈 사건으로 검찰이 비난받을때 사토(좌등도부) 삿포로(찰황)검
사장이 언론 기고문을 통해 검찰에 부족한 것 으로 지적한 항목이다.
올해초 그가 임기전 사임할 것이란 풍문이 나돌았다. 우선 검찰의
명예가 어느 정도 회복됐기 때문이다. 정년을 앞둔 법무관료파 네고
로(근래태주) 도쿄지검 검사장에게 총장을 경험시켜 주기위해서란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일하겠다"고 선언했다.옴교 사건, 야마
구치(산구민부)의원이 개입된 혐의를 받고있는 2백79억엔 부정융자 사
건등 잇따라 터진 사건도 그의 임기연장을 도와줬다. 그가 잊지 못하
는 선배는 다나카 1심판결 당시 검사총장이던 후세(포시건). 후세 총
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죄판결이 나오면 내가 책임진다. 당신
들은 애당초 사표낼 생각 하지마라." 잘나가는 도쿄-교토(경도)대
학 법학부 출신이 아닌 오카야마(강산)대 법문학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검사총장인 그는 후배들에게 "증거와 사실이 있으면 빠짐없이 수사하라
"고 지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