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 20여명 자원봉사 땀흘려/목포-창원서도 단숨에 올라와/아버지
미화원24명 구조 앞장/"대가족 정성으로 혈육살렸다" 최명석군의 기
적같은 생환에는 한국식 대가족제도 특유의 끈끈한 혈육의 정과 사랑이
큰 몫을 했다. 부모, 형제는 물론 숙부, 고모, 외삼촌, 외숙모들이
멀리 창원, 목포 등지에서까지 총동원돼 현장을 누비며 구조작업과 자
원봉사활동에 동참했으며, 이들이 뿌린 땀과 눈물, 애틋한 정성과 기도
가 결국 최군을 살렸다고 주위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최군 스스로도
병원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릴 부모 형제 일가친척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반드시 살아나가야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밝혔듯이, 평소 가족-친
척들이 보여준 사랑과 유대감이 극한적인 상황에서 최군에게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해준 것이다. 사고당일인 지난29일밤 현장을 찾은 아버
지 최봉렬씨(51.웅진코웨이 지부장)를 비롯,어머니 전인자씨(50)와
형 태석(25.사업),누나 은진씨(23)등은 아득한 절망감이 엄습하
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자원봉사에 뛰어들었다. "기다릴 수
없었어요. 어디선가 아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어요"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형은 돌더미를 뒤지는 구조대원으로, 어머니와 누나는 삼풍주
유소 맨 바닥을 연락장소로 정하고 부녀봉사대원으로 뛰어들었다. 만사
제쳐놓고 달려온 숙부 봉룡씨(48.의류업)는 해머와 삽을 들었고, 또
다른 숙부 봉길(46.회사원), 봉선씨(43)등은 퇴근후면 현장에 들
러 자원봉사로 구슬땀을 흘렸다. 사고 나흘째인 일요일에는 전주와 광
주에 사는 숙부 봉식(40), 고모 영심(37), 숙부 동윤씨(35.
광주 서석고 교사)등이 "명석이를 그대로 보낼 수 없다"며 현장을 찾
아와 팔을 걷어 붙였으며, 창원, 광주, 목포에 흩어져 살던 전충갑씨
(49.현대정공 사원)등 외삼촌 3형제까지 단걸음으로 서울로 올라와
가세했다. 전주에 사는 조부모 최이남(79), 최점순씨(72)는 고
령이라 현장에는 올라오지 못했지만 귀염둥이 손주의 생환을 쉴새없이 빌
었다. 미화원 24명을 구출할 때 앞장섰던 아버지는 생환자들을 보며
"내 아들도 살아있을 것 "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새우잠 자기를 10여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의 팔을 잡아
끄는 기쁨은 줄어갔다. 아들을 향한 희망도 마찬가지였다. 8일 밤
에는 자원봉사단마저 해산했다. 장대빗속에서 가족들은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뭘 잘 못했나 하고 곰곰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건발생 10일째인 이날 밤 친척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최후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아들이
일하던 매장 사장인 홍경희씨(여)가 "점을 봤는 데 명석이가 꼭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 계속 귀에 아른거렸다. 작은 아버지는
살아있는 명석이를 꿈에서 봤다고 했다. 남편 최씨가 다니는 회사 상
무도 같은 꿈을 꿨다며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전날 오전에 알려왔다.
전씨는 남편에게 매달렸다. "아들의 시체가 발견될때까지는 절대 떠날
수 없다"고 버텼다.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3명은 이날도 주유소에
서 잠을 청했다. 9일 아침.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최명석이 아들
아닙니까. 살아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있어요 기적입니다." 숨이
턱 막혔다. 가족들은 1백m쯤 떨어진 현장으로 단걸음에 달려갔다.
선우정-최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