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미달품 남용 "눈가림 시공" 대형건설업체인 D건설 이모차장(4
0)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보고 3년전 일본지사에 근무할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일본 공사장에서 작업인부를 지휘하는 사람은 항상 연필과
서류, 자를 들고 작업과정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그런 행동이 미련스럽
게 보였지만 곧 시방서를 따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S건설 박모
부장(43)은 최근 현장 콘크리트타설 담당 십장과 심하게 다퉜다. 레
미콘 상태가 이상해 손으로 눌러봤더니 하얀 거품이 일 정도로 시멘트함
량이 부족했다. 박부장은 "불량레미콘을 그냥 쓸 수 없다"며 돌려보내
려 했으나, 공기 때문에 그대로 하자는 십장과 승강이를 벌여야 했다.
결국 다른 레미콘업체를 찾아가 사정 끝에 한밤중에 레미콘을 받아 검
사를 한 다음 새벽에야 타설을 끝냈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우리 건설현장 모습은 외국과 차이가 많다. 대충하면
되겠지 가 우리 현실이라면 그들은 시방서대로 충실하게 가 관행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득달같이 감리원에게 지적을 받고 재시공하기 일쑤다
. 부실공사가 생기는 가장 큰이유중하나가 시방서를 무시하는 현장관행
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설계에서부터 정해지는 시방서는 공사를 위한
교과서.그러나 우리현장에서는아예 한쪽으로 제쳐놓고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감리자가 이것을 지적하다가 기능공들과 부딪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하반기 대구지하철 1-13공구 정거장공사장에
서는 공사를 위해 가시설물을 만들면서 휘어진 H빔을 대충 썼다. 설계
상으로는 가시설물도 공사의 연장이므로 정상적인 빔을 쓰도록 돼 있다.
1-9공구 터널 배수관용 흄관은 정해진 규격에 미달하는 것을 사용했
다. 지난해 11월에는 모 업체가 경기도 양평대교 교량을 보수하면서
고강도철근을 사용하란 시방서를 무시하고 일반철근을 사용했다가 적발되기
도 했다. "현장에서는 매일 쫓고 쫓기는 싸움이 벌어진다고 보면 됩
니다." 국내 건축공사현장을 두루 거친 H건설 박모소장(54)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아무리 완벽한 시방서가 있어도 실제로 작업을 하는 인
부들이 지키지 않고, 잘 감독(감리)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공사인부들
은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편하게 마치려 하고, 발주자는 공기내
에 완벽하게 공사를 수행하려고 감시한다. 그러나 시방서를 지키면 공
기를 못맞추고,공사비가 더 들어가는 것도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시방
서대로 공사를 하려면 목이 열개라도 배겨낼 현장소장은 없을 것"이라는
어느 소장의 지적이 우리에겐 분명한 현실이다. 2면에 계속 <1면
서 계속> 시방서를 무시하는 사례는 많다. 시공의 첫 단계인 터파기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반의 안정성 확보. 지반을 목표지점보다 깊이
파서도 안된다. 때문에 대부분 업체들은 목표지점보다 10㎝를 덜
파고 나머지는 삽으로 조심조심 파내라 는 규정도 만들어 놓고 있다.
만일 건물이 들어설 위치보다 따을 더 파면,되메우기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잘못되면 땅이 가라앉는 요인이 된다. 부산 동삼동 도개공아파트
나 광주 월곡동 K아파트,포항 L아파트 등이 터파기 시방서를 무시해
기우뚱 아파트 가 된 대표적 사례다. 철근배근이나 콘크리트 타설때
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타설하기 앞서 염화물-압축강도시험을 반드시
하라거나,철근을 어떤 방법으로 이으라는 시공매뉴얼은 있으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전직 건설회사 간부는 "철근배근 간격을 무시하는 등 시
방서와 달리 시공하는 현장은 전체적으로 볼때 80%는 넘을 것"이라고
말할정도다. 자재 규격이나 품질도 마찬가지다. 레미콘은 물론 이고
벽돌이나 방수자재는모두 압축강도시험을 거친 합격품을 써야 하지만 건
설현장에서는 수지타산때문에 번번이 무시당한다. 시방서 자체에도 문제
는 있다. 시방서가 부실해 현장에서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시방서
는 공정을 표준화할 수 있도록 시공사에 제공돼야 한다. 시방서에서
착공준비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주는 공정관리상 문제도 있다. 공사감독이
철저하다는 주택공사의 경우 얼마전까지만 해도 업체에 착공준비 기간을
겨우 13일 줬다. 준비기간이 짧으니 시방서를 무시하기 십상이다.
주공 박부이 품질대책1부장(46)은 "싱가포르의 경우 계약후 공사착수
까지 약1개월을 주는데 비해 주공은 너무 짧아 공정표작성등 공사준비에
애로가 많았던게 사실"이라며 최근에야 준비기간을 늘렸다고 밝혔다.
쌍용건설 해외건축부 오문탁 차장(42)은 "믿을 수 있는 시방서,충
부한 시간 여유와 합리적인 공사관리,시방서에 충실하려는 현장 관계자들
의 인식전환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