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장해야 한다" 건의 회사측 묵살/오전부터 5층 식당 바닥 균열
무너진 천장서 물 쏟아져/5층 폐쇄 "이용말라" 안내방송-오후2시/
직원들 4.5층 매장물건 옮겨-오후4시/"우르르" 굉음 3~4초만에
폭삭-오후5시57분 목요일 오후의 서울 삼풍백화점. 쇼핑객들은 백
화점에 들어서면서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한증막 같았다
. 매장의 직원들도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왜 이렇
게 덥냐"는 고객들의 항의에 직원들은 "아마 냉방장치를 수리중인 모양
"이라고 답했다. 냉방장치가 가동을 중단한 것은 낮 12시쯤부터였다.
오후 3시쯤 쇼핑하러 왔던 주부 장인석씨(39)는 견디다 못해 물
건사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나왔다. "마치 찜통속 같았다"고 했다.
이상한 조짐은 아침부터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5층 식당가의 음식점
들 벽에 금이 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건물 관리직원들과 간부들이 수
시로 4층과 5층을 오르내렸다. 안전점검을 하는 중이라는 얘기도 있었
다. 오전 9시30분쯤 내부기둥이 20㎝가량 금가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은 것을 발견한 5층 비빔밥집 춘원 의 주인 김서정씨는 즉각
관리실에 문의했다. 잠시후 간부인 듯한 직원들이 찾아와 "곧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고 돌아갔으며, 겁이 난 김씨는 직원들과 함께 백화점
을 빠져나왔다. 춘원 과 맞붙은 우동집에선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나왔
고 냉면집 천장도 가라앉고 있었다. 이들 음식점들엔 관리직원들이
출입금지 테이프를 쳤다. 오전 11시쯤 현장을 찾은 설계감리회사인
우원건축 관계자들은 건물이 붕괴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낮 12시
쯤엔 옥상 쿨링타워의 가동이 중단됐다. 오후 1시쯤 5층 식당을 다
시 들른 백화점 간부들은 금이 간 기둥 밑바닥을 뜯어냈다. 가로 60
㎝ 세로 1백20㎝ 크기의 바닥 타일 3개를 떼어낸 관리직원들은 철골
구조물에 금이 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2시 연락을 받고 백
화점에 도착한 이준회장 주재로 대책회의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긴급
보수공사가 결정됐다. 이때부터 5층 식당가를 찾은 고객들은 직원들의
제지를 받아야 했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계속 운행되고 있었
지만 "오늘은 5층을 이용할 수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넥타이를
맨 40대 한 간부는 짜증스럽게 손을 휘휘 내저으며 쇼핑객들을 내쫓았
다. 구내방송을 통해 5층은 이용하지 말라는 안내방송도 있었다. 오
후 2시쯤 거래차 4층 귀금속 매장을 찾은 서춘옥씨는 천장에 금이 가
고 일부 내려앉은 것을 발견했다. 매장의 진열장 유리가 안쪽으로 휠
만큼 건물 천장과 바닥이 내려앉고 있었다. 무전기를 들고 매장 이곳저
곳을 돌아다니며 점검하는 관리직원들이 무전기에 대고 "양호" "양호"
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를 넘으면서 관리직원들의
표정은 더욱 긴장됐다. 4층과 5층 매장의 물건들을 옮기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 직원들은 "불안하다"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4층
의 귀금속 매장 천장은 오전보다 훨씬 더 가라앉고 있었다. 물이 새는
곳도 있었다. 4층 가정용품부 직원 김재선씨(31)는 "오전부터 매
장 바닥에서 뚝뚝 하며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마
치 지하철이 땅밑을 지나갈 때의 느낌이었다는 직원도 있다.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3층 매장의 직원들 사이에선 철수해
야 되는게 아니냐는 근심스런 대화가 오갔다. 입구쪽 매장에 모여있던
직원들중 한사람이 웃으면서 "우리는 건물이 무너지면 바로 뛰어나가면
될 것 아니냐"며 다른 직원들을 안심시켰으나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매장은 점점 고객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지하1~3층의 주
차장에도 차츰 빈자리들이 줄어들었다. 5시를 넘으면서는 찬거리를 마련
하러 시장가방을 들고 찾아오는 주부고객들이 지하식품매장에 몰려들었다.
자녀들을 백화점 카트에 태우거나 손을 잡아쥐고 매장을 찾는 주부들도
적지 않았다. 5시50분을 조금 넘어섰을 때쯤 갑자기 5층 매장에
서 관리직원들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빨리 밖으로 빠져나가라는 외침
이었다. 백화점내 비상벨이 울린 것은 이때쯤. 우르릉 하며 건물이
우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어리둥절하던 고객들은 일부직원들의 뒤를 따
라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5층 커피숍에 앉아 있다 나
오던 대학생 김상우씨도 엉겹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한구석에서는 10여명의 사람들이 "물건을 치우라"고 외치는 등 마치
싸우는듯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김씨가 정신없이 백화점밖으로 뛰쳐
나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5층 일식집 종업
원 이병호씨는 "어디선가 빨리 피하라 는 소리가 들려 남쪽 스포츠관
과 연결된 통로로 달려나가 간신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
하 2층에 있다가 구조된 보안요원 오진호씨는 "태풍이 부는 것처럼 갑
자기 컴컴해지더니 쌩 하는 먼지바람이 불어와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 사고직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던 박경규씨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
간 우르릉 하는 굉음에 급히 차를 후진시켜 빠져나왔다"면서 "5초쯤
후에 건물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붕괴 3~4초만에 내려앉았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1층 로비에 있다 탈출한 김은경씨(27.여)는 "갑자
기 돌덩이들이 떨어져 내려 사람들에게 밀리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지하 주차장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린 후 지하 3층의 일부 생존자들은 백화점 한 남자직원의 인솔로 비
상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지하 3층 휴게실에서 쉬다 사고를 당한 백화
점 문화부직원 김경숙씨(28.여)는 "시체를 밟고 빠져나왔다"고 말했
다. 순식간에 건물 주변엔 뿌연 먼지의 회오리바람으로 가득 찼고,
백화점 앞 8차선 도로로는 건물파편들이 튀었다. 붕괴의 여파로 태풍같
은 바람이 10여초간 몰아쳤다. 사고직후 남아있는 건물 잔해 사이에
선 손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도 보였다. 주변 차도와 인도
에는 여자용 신발과 화장품 액세서리 등 백화점 진열상품들이 나뒹굴었고
피투성이가 된채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속속 목격됐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아수라장의 현장이었다. 한삼희 기자 *"가스
폭발 아니다"/균열발견 오후3시 밸브 잠궈/통산부 최종확인 통상산
업부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가스누출에 의한 폭발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통상산업부 안전점검대책반은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가스안전공사 직원 40여명을 현장에 투입 가스누출 흔적을
확인한 결과, 사고 발생 2시간후인 오후 8시15분 이번 사고는 가스
누출에 의한 폭발사고는 아니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통상
산업부 박운서 차관은 "가스안전공사 최인영 사장으로부터 삼풍백화점에
상주하는 도시가스 관리대행업소 직원이 이날 오전 백화점 건물에 균열
이 간 것을 보고 백화점에 보고했으나 백화점측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
지 않자, 오후 3시 지상 3층 가스밸브를 잠궈 가스가 4-5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차단했다 는 보고를 받았으며, 사고직후인 오후 6시5분
경 삼풍백화점 직원인 권영만씨가 지하 4층 기계실내 냉온수기의 가스
메인 차단 밸브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대한도시가스도 사고 직후 오
후 6시25분 삼풍백화점으로 출동, 가스밸브를 차단하려고 했으나 밸브
는 이미 잠겨져 있는 상태이며, 인근 정압기 2개소도 정상적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또 대한도시가스는 지난 5월20일 삼풍백화점
가스안전 점검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통상산업부 관계자는 "
주변 건물의 유리창등이 파손되지 않았고, 폭발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
부실시공에 의한 건물붕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강효상-김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