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인생행로 내세워 진정한 인간애 부각 소설뿐 아니라 미술평론
, 드라마, 수필 등 다방면으로 재능있는 영국작가 존 버거(69)가
최근 에이즈에 걸린 프랑스 여인을 사랑한 이탈리아 청년의 휴먼스토리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To the Wedding) (판테온 북스간)
을 발표했다. 영국인이면서도 프랑스 산간의 농촌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수십년째 살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버거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대
지와 인간, 인간과 인간의 본래적 관계를 복원하는 일에 정신적 노력을
쏟아온 문명비평계열의 작가. 국내에도 이미 장편소설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민음사간)를 비롯해 몇몇 작품들이 번역돼 있다.
결혼식장 가는 길 의 화자는 초바나코스라고 불리는 눈먼 그리스인.
그는 사람들이 신의 기적적인 개입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신에게 일
깨워 줄 목적으로 교회의 감실 앞을 장식하는데 사용되는 양각 금속 액
세서리 타마타 를 판매하는 상인이다. 눈치빠른 독자들은 맹인
그리스인 화자 등의 단어를 통해 버거가 초바나코스를 등장시킨 이
유를 금방 알 것이다. 오딧세이.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맹인의 목격
자 가 그려낸 세가지 오딧세이를 경험하게 된다. 첫번째 오딧세이는
젊은 프랑스여성 니농과 이탈리아 남성 지노가 결혼을 향해 항해를 하는
것이다. 초바나코스의 표현에 따르면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멜론 조
각들같은" 목소리를 가진 니농은 어느날 과거의 애인이 자신에게 천형의
질병 에이즈를 옮겨주고 떠났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사랑하는 지노를
위해 둘의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럴 의사가 없을 뿐
더러 오히려 그녀를 적극 감싼다. 결국 지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니
농을 죽여버리겠다고 호언했던 아버지까지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철로원이며 나이든 사회주의자인 니농의 아버지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까지 긴 오토바이 여행을 떠난다. 두번째 오딧세이
이다. 그의 여행은 이상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희한한 일들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세번째 오딧세이는 니농의 어머니 첸다가 떠난다. 철로원과
는 전혀 공식 결혼한 적이 없는 니농의 어머니 젠다는 슬로바키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향하는데 버스 안에서 동지 를 만나 동행하게 된
다. 그녀의 머릿속은 자신의 딸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차 있으
며 니농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자책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의
일을 내가 겪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왜냐하면 니농이 어렸을 때 젠
다는 그들이 살고있던 프랑스 도시를 떠나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는 집을
방문했다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결코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 버거 특유의 인간애가 진하게 드러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