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같은 우리말로 그린/호방하고 활달한 예인들의 삶 국수 를 읽
고 있다. 아직 완성되기 전이라 나도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들려오
는 말에 김성동선생은 국수 를 완성시키기 위해 남쪽 어느 깊은 암자
로 떠나셨다는데 . 이 초여름, 그곳에도 뻐꾸기가 구슬피 울겠다.
국수 . 소리 잘하고 악기 잘 다루고 글씨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또한 바둑을 가장 잘 두거나 의술이 가장 뛰어난 사람 . 말하
자면 가장 높은 단계의 예술을 이루어낸 사람들에게 바치는 최상의 헌사
. 국수, 하면 그저 바둑만 떠올렸던 나에겐 새롭고 풍요로운 뜻이다.
헌걸차고 활달한 예인들의 삶은, 뜻을 깨치고 나면 가슴이 쩡하니 갈
라지는 법문같다. 이기고자 하면 지고 지고자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인
즉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는 것과 한가
지 . 문득 가슴이 벅차와서 책에서 시선을 떼고 먼산을 바라다본다.
초여름의 연푸름이 눈에 차오른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슴벅참
인지. 지난 70년대 후반 독서계의 광풍이었던 만다라 에 대한 기
억이 겹쳐온다. 새파랗게 떠오른 젊은 사문 지산. 그는 불문에 있었으
나 그의 의식과 행적은 세속에 있는 듯 하였다. 소줏빛과 잿빛을 띠고
절집을 내려오는 듯 했다. 그런데 지금 국수 속의 예인들은 그와
반대인 것같다. 분명 세속에 살고 있건만 그들의 의식과 행적은 산에
가 있는 듯하다. 그들은 분분한 세속의 삶을 도량 속으로 이끌어간다
. 초여름 산빛에서 거두어 다시 책을본다. 참새 새끼들인듯 종알대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꺄르르 꺄르르 나비의 나래짓만 보아도 꽃잎 같
은 웃음을 터뜨리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놀래었는가. 참나무 등걸에
붙어있던 집게벌레가 고개를 비틀더니, 구구구 날아오르는 멧비둘기 쪽
을 치어다본다 . 군불로 덥혀놓은 따다탄 방 같은 우리말들이 이
장 저장에서 쏟아진다. 피자와 밀러와 재즈에게 밀려나는가 싶은 우리말
들의 애상 위로 명민하고 해맑은 소년 석규가 눈물을 찍어 방바닥에 그
린 바둑알이 겹쳐진다. 그리운 우리말. 이땅에 살면서 그것도 작가로
살면서 우리 말이 곁에 없는 듯 그리워하다니. 비둘기나 꿩이 목
숨이 있어 귀한 것이라면 나물이나 소채두 다 마찬가지지. 그것들두 목
숨이 있어 귀헌 것일테니께 . 비단결같이, 텃밭에 핀 접시꽃같이 그리
운 우리말이 질펀하다. 진달래 꽃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보고,
꽃방망이도 만들어보고, 네가 센가 내가 센가 꽃술을 서로 얽어 당기며
힘겨룸도 하여보고, 산철쭉 뚝 분질러 입에도 물어보고, 속삭이듯 낮
은 목소리로 도란도란 흘러내리는 꼴짜기의 푸른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가득 가득 두 손바닥 넘치게 받아 입 속도 헹구어보고 피용 피
피용 물수제비 뜨던 조약돌 뻗쳐 플 산까마귀나 좇아 팔매질도 하여 보
며 . 얼마나 공을 들였으면 이럴까. 다치고 찢긴 우리말들이 언
땅을 뚫고 나온 새순같이 소생해서 목화처럼 자욱이 깔려있다. 점점 더
좁디 좁아지는 내 세계관 속으로 난세의 인걸들이 텀벙 뛰어들어 애써
가고 있는 좁은 길을 휘- 저어버린다. 우리말을 더럽힌 한 사람으로
서 무참해진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