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호는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 문화재를
알고 찾고 가꾸자 는 표어를 내걸고 크게 활성화됐다. 아산 이충무공유
적, 안동 도산서원, 여주 세종대왕릉, 경주 불국사등 유적지의 보수정
화사업과 국립종합박물관 건립 및 매장문화재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 문화재 보존사업을 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부족하고 경험이 적
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국립종합박물관(현 민속박물관)은
경복궁안에 터를 잡아 궁의 경관이 저해됨은 물론 고궁과의 조화를 우
선하다 보니 박물관의 전시기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계획 당시
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나 고궁의 면모를 위해서는 장차 옮겨져야
할 것이다. 불국사 복원은 박정희전대통령이 용재(목재)의 부족현상
때문에 콘크리트로 시공하는 것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문화
재위원회는 전통재료가 아니고 질감이 딱딱하다는 콘크리트의 결함을 지적
하고,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때 불탄 오사카(대판)의 사천왕사를 콘크
리트로 지어 실패했다는 선례를 알렸으며 결국 목조로 복원됐던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1971년 7월에 공주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지금
그 유물은 공주박물관에 이관 전시중이며 왕릉의 현실(무덤내부)은 공
개관람케 하고 있다. 보존을 위해서라면 현실은 당연히 폐쇄해야 하나
관람객의 성화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당장 보고 싶은 내 욕망을
떠나 후세를 위한 시민의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같은 무렵 일본 나라
현(내량현)에서 발견된 다카마쓰고분(고송총)은 발굴조사를 마친후 폐쇄
해 놓고 지금까지도 발굴당시의 상태대로 보존하기 위한 조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은 현상불변의 원칙 이 우선돼야 한다.
문화재가 발견된 현상에서 더이상 훼손이나 변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처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 방법이다. 또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
는 의술과 같이 문화재를 치료하는 보존공법이 날로 발전해 가는 점은
문화재 보호의 미래를 밝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