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원생들의 환상과 어른들의 환멸스런 현실 중첩 '순진한 눈'통해
인간애 제시 90년대의 젊은 소설가 채영주씨(33)가 신작 장편소
설 목마들의 언덕 (문학동네간)을 펴냈다. 그는 90년대의 소설가군
을 거론할 때 평론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도 대중적으로는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또래의 작가들에 비해 90년대적 유행의 감각을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문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은 80년대 운동권의 후일담이나 90년대의 신세대적 감수성 사이
에 끼인 세대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사회적 현상과 연관시켜 발
표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채씨는 그동안 역사와 시간의 의미를 우화
적으로 탐색한 시간 속의 도적 , 재미한국인과 흑인들의 갈등을 그린
크레파스 등의 장편 소설을 통해 또래의 작가들과는 유별나게 다른
문학적 질료를 선택해왔다. 이번에 펴낸 목마들의 언덕 도 신세대
소설의 유행에 비추어 본다면 구세대적 감각의 산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소설은 남도에 자리잡은 고아원 천사의 집 을 무대로 어린 원생
들과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10개의 연작 소설 형식으로 들려준다.
압구정동과 홍대 앞 카페거리가 얘기되는 세태에서 그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시골의 고아원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그
려낸다. 이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순진한 눈의 관점 이다. 나
로 등장하는 어린 원생의 입을 통해 고아원 아이들의 환상과 그들을 둘
러싼 어른들의 환멸스러운 현실이 중첩되어 있다. 풍족하지 못한 성장
기를 보내야 하는 원생들의 소망은 다른 아이가 되고 싶다 는 것이다
. 고참 형들의 매질이나 밥에 라면수프를 뿌려서 먹어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사는 그 아이들에게 고아원 울타리
너머의 세상은 마법의 성 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른들
은 그 성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지 못한다. 그 아이들에게 인생
을 가르쳐줄 고아원 원장이나 주변의 어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목마들의 언덕 이란 제목은 쇠기둥에 묶여 제자리를 맴도
는 회전목마처럼 운명에 속박된 인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작가는 어린 아이의 눈을 필터로 삼아 따뜻한 인간애와 희망의 원리를
제시하려고 애썼다. 소설 속의 아이들은 성실한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 후원금을 받아 대학까지 진학
한다. 고아원에서의 취재 경험을 통해 이 소설을 써낸 작가의 시선은
고아들에 대한 선입관이나 과장에 빠지지 않고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꾸려간다. 때로는 지나치게 담백하다는 것이 소설의 활기를 위축시킨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작가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아 의식에 시달리는 세상이 되고 있다"면서 "고아원이란 한
집단 속에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어떻게 조명되고 있는가를 살펴보
려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