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지음 설순봉 옮김/우울증 시달리는 도시인에/대안으로 내놓은
농촌의 삶/섬세한 운율의 문장으로 그려 이따끔 북한산 쪽을 향해
걸어 가다보면 산 입구 조그만 가게집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유리창
에 붙여진 따다탄방 있음 이라는 글씨때문이다. 벌써 이삼년째 그 앞
을 지나치면서 한 번도 그 따다탄 방 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매번
그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게 된다. 따다탄 방 이라는 글씨가 연
상시키는 묘한 호소력, 언 손과 언 뺨과 언 발들을 향한 연민과 이해
와 애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따다탄 방 에 대한 추억들. 존 버거
의 소설은 그 따다탄 방 같다. 그앞에 붙은 명칭은 소설가, 미술
평론가, 수필가, 정치이론가다. 그러면서 이채로운건 그가 30년동안이
나 소설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의 주무대가 되는 알프스산의
농경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 생활의 묘사에서 시
작하여 거대도시로 변한 세계를 무대로 하였다가 상징적으로 귀향하는 내
용의 이 3부작은 존 버거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바친 참여로서의 문
학도 되는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
니라 라는 성경의 앞뒤 문맥은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
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
여하였느니라 이다. 역자는 이 뜻을 인류 역사의 발전적 가능성에 대한
암시로 본다. 앞에 선 사람이 노력한 결실을 뒤에 온 사람이 누리고
또 그 자원을 바탕으로 노력하여 그보다 더 뒤에 오는 사람으로 더
좋은 결실을 이루게 한다는 . 그런데 우리들의 농촌을 위해 뒤에 누가
오기나 할까. 존 버거는 참여주의자이지만 그는 조직적으로 분석하거
나 이념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매일의 구체적인 삶과
, 어제와 연대된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시간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며 저절로 형성된 인간관계에 더 희망을 거는 것같다. 그의 등장
인물들은 한결같이 시련을 당하나 내겐 그 시련이 행복해 보인다. 왜일
까? 그건 내가 살고 있는 이 환경에선 그런 친밀감의 삶을 엿볼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 친밀감때문에 그의 날카롭고 정확한 부분이 오
히려 음악성을 갖춰 부드럽고 섬세한 운율의 문장을 탄생시킨다. 이제
농촌적인 삶은 실제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기억될 것인가. 그래도
농촌적 삶에 대한 희망이 솟구치니 야릇한 일이다. 그의 소설속의 잔존
인물들은 외부세력들에 의해 압박받고 무너지면서도 인간의 행복이라고
할 수있는 생에 대한 긍정,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전형적인 도시
인들보다 훨씬 더 많이 엿보인다.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수많은 도
시인들과 달리 그들은 빈곤과 시련앞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내적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존 버거가 어떤 형태로든 농촌적 삶의 유형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안으로 내놓기 위해 그의 사유를 바치는 이유이기
도 할 것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