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규 전집 5권 출간 생전의 논문-대화 모아/상투적 예찬론
벗어나 철학관 조명/'구체성 중시한 현실론자'/ 조용한 사유 생전
책한권 없어 "그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2
0세기 철학자 하이데거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며 한 말
이다. 철학자의 삶은 겉으로 볼 때 이처럼 단순해야 한다는 역설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철학자가 주목받는 것은 그가 한 말과 쓴 책을
통해 남긴 사유의 흔적 때문이다. 사후에야 비로소 전집이 나오기
시작한 고 박홍규 교수(전서울대 철학과)는 실제로 "태어나서 교수가
되어 제자를 기르다가 죽었다"고 말해도 될 만큼 단조로운 삶을 살았
다. 물론 겉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그가 35년간 서울대 교수생활을
하면서 맡은 행정직은 돌아가면서 하는 학과장 이 전부였다. 그래서
94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주변친지들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최근 제자들이 간행한 박홍규 전집 (민음사간) 1,2권이 나
오면서 박홍규란 이름 석자가 새삼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총 5권이
나오게 될 박홍규 전집 은 현재 나온 두권만 보더라도 우리 학계의
관행이 되다시피 한 상투적인 스승예찬론이나 잡문모음집과는 격을 달리한
다. 학자의 글 에 엄격함을 부여하려 했던 박 교수는 생전에 단
한권의 책도 낸 적이 없다. 그가 남긴 것은 원고지 1천2백장 가량의
논문 9편과 60분짜리 테이프 1백개분량의 강의 녹음이 전부이다.
이번에 그의 제자들이 간행한 전집은 이것들을 필사하고 재편집한 것들이
다. 그래서 9편의 논문을 모은 제1권 희랍철학 논고 만이 일반저서
의 형태이고 제2권부터 제5권까지의 형이상학 강의 1 2 3 4 는
제자들과의 대화 를 수록하고 있다. 희랍철학논고 는 플라톤의
대화편 4개에 대한 분석과 희랍철학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한결같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빈틈이 없다는 특징
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형이상학 이라는 철학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은 학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구체성이 돋
보인다. 이는 박 교수의 학문 전체를 조망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그의 제자 김남두 교수(서울대 철학)는 "선생님은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관념론 철학에 대해 과도하다 싶을 만큼 폄하하셨으며 인류학,
심리학, 생물학, 물리학등 실증적 지식을 강조하고 토목술, 군사술,
법률등 실제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던 로마문화에 주목했었다"
며 "희랍철학과 함께 현대 프랑스철학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프랑스 철
학이 지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격 때문이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희랍철학 논고 에도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근원적 자유 라는 프랑스철
학 관계 논문 한 편이 포함돼 있다. 희랍철학 논고 가 박홍규사상
의 서론이라면 형이상학 강의 는 본론에 해당한다. 우리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승과 제자의 철학적 토론 을 생중계하고 있는 이 책은
형이상학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독자들도 박 교수와 제자들간의 대화 내
용을 따라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이상학의 세계에 이르게 해준다.
여기서 박교수가 도달한 높은 학문적 경지는 "선생의 저술과 함께 우리
의 사상과 철학도 이제 서양철학의 단순한 수용의 단계를 넘어 스스로
조회와 탐구의 대상이 될 원전을 갖게 되었다"는 박홍규 전집 발간
사의 한 구절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대화에 참석했던
김남두(서울대) 이태수( ) 윤구병(충북대) 손동현 교수(성균관대)
등은 국내 철학계의 중견학자들로 고대철학 및 프랑스철학 분야에서 독보
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박홍규 교수를 제1세대의 대표
적인 철학자 박종홍 전서울대 교수 이후 두번째로 나온 자기세계를 가
진 철학자 라고 평가한다. *박홍규는 누구 1919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박홍규는 광주 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일고)에
다니다가 서울 중앙중학교, 일본 와세다대 제일고등학교 등으로 전학했
다. 1940년 3월 와세다대 영문과에 입학했던 그는 적성에 맞지 않
아 이듬해 다시 시험을 쳐서 철학과에 입학할 만큼 강한 주관의 소유자
였다. 1943년 9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가 관심을 쏟은 철학
자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 야스페르스, 하르트만 등 주로 독일철학
자들이었다. 이는 일본의 철학계가 당시 독일철학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
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홍규는 철학공부를 하는 틈틈이 어학에도 많
은 시간을 할애해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 에서 프랑스어, 라틴어, 희
랍어 등을 익혀 그후 그가 희랍철학과 프랑스철학으로 학문적 노력을 쏟
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광복후 귀국해 1945년 10월 경성치과대학
에서 전임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 1946년 10월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이래 1984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제자육성과 학문연마에만 몰
두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강의도중 모호한 구절이나 용어가 나오면
충분히 이해가 될 때까지 세시간이고 네시간이고 학생들과 토의를 계속하
는 철저함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게으른 학생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 정년퇴임 이후에도 1986년 한국서양고전학회를 창립하는 등 사실
상 불모지와도 같은 국내의 고전학계에 초석을 놓는 일에 힘쓰다가 19
94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