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만의 언어유희 일반인과 호흡맞춰야 봄비가 심심찮게 흩뿌리는
날들이 다소 지리하게 느껴지는 시간에 필자가 근무하는 미술관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왔다. 생소한 이름, 기억속에서 전혀 떠올라주지 않는
이름 석자를 가만 눈으로 읽어보았다. 겉봉을 뜯고 A4 용지 3장에
가는 인쇄체로 프린트된 그 컴퓨터글자를 천천히, 그러나 급하게 눈으
로 쫓아가 보았다. 필자의 그간의 글들에 대한 한 꼼꼼한 독자로서의
소감을 적은 것이었다. 그의 편지는 실로 상당한 안목과 깐깐하고 날
카로운 시각으로 잘못된 나의 글쓰기를 지적해주었고 유려한 글쓰기로
미술에세이 읽기의 즐거움 을 주었으면 하는 따뜻한 바람을 전해온 것이
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난후 필자는 한동안 멍하고 아득한 기분에 휩싸
였다. 부끄러움 그리고 책임감, 내 자신에 대한 무한한 회의와 경멸이
혼재된 기분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간에 저지른 글쓰
기의 오만과 해악말이다. 그림을 사랑하는 진실한 애호가들에게 오히려
버겁고 난해하고 형편없는 글들을 들이대 그림에 대한 관심과 이해마저도
내몰아쳐버린 그 죄악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큐레이터로 필자가
그간에 기획한 전시에도 해당하는 대목일 것이다. 미술의 해 라는
금년에 미술의 해 조직위는 미술의 대중화, 미술의 생활화를 모토로
내세워 수많은 행사를 벌이고 있다. 모토만 봐도 그만큼 한국 미술이
우리들의 삶과는 유리된 채 비대중화, 비생활화를 스스로 지녀왔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한해에 열리는 수천 건의 전시 그리고 도록과 서
문이 쏟아져 나오고 그에 따라 많은 미술인들과 미술애호가들이 전시를
보고 글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그러한 것들이 생산적이고 놀라움
과 감동, 각성의 즐거움을 주거나 예리하고 깊이있는 지적 진실을 맛보
게 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타성적이고 형식적인 선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
을 지울 수 없다. 대중들의 미적 취향의 저급성이나 비전문성을 강조하
는 입장에 대한 미술전문인들의 분명한 자기 반성들도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술작품을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전시나
평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획의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창백히 나열된 전시, 메시지 전달이 전혀 되지 못하는 죽은 말들의
행렬과 글읽기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평문앞에서 사람들은 그림에 벽을
느끼고 동시에 미술계를 수상하고 접근키 어려운 묘한 곳으로 간주해버
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영향이 또한 작가들에게 작품자체를 일상과
현실속의 대중들의 감각과 감정, 세계관과는 전혀 동떨어진 채 자기들만
의 세계에서 서로가 용인하는 소통에 만족하고, 동시에 심각하고 심오하
고 난해한 예술가나 전문인들의 영역내에서만 사고하게 하고, 그곳에서만
조작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나치게 무겁
고 버거운 주제를 끌어안고 병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심오한 예술(미술)
인양 인식한다거나 혹은 인테리어적이고 장식적인 감각으로 마구 치장해놓
는 상업적 볼거리의 구성이나 매만짐이 작업의 전부인양 오해하는 풍토
역시 거기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가뜩이나 이미지와 볼거리가 풍요로
운 세계, 현실속에서 이미지 중독에 걸린 대중들에게 이 세계의 허구와
허상들을 예리하게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의 건강한 힘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게 하는 전시-평문이 없이는 우리 미술의 앞날은 요원하다. 언
젠가 김수영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모든 창작활동에서는 무엇보다도 완전
한 언론자유 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우리 화단, 미술계에서도 시
급히 필요한 것은 정확하고 날카롭고 올바른 시각을 지닌 전시와 비평문
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자유와 용기, 그리고 그의 대중화에 있다
고 본다. 일반 미술애호가나 대중들이 전시를 보고 글을 읽고 감동과
꿈을 지니고 그래서 그림을 사랑하는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었으면, 그
리고 그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화단을 떠올려본다. 이런 저런 생각을
부추겨주고 뼈아픈 반성과 긴장을 준, 이른 아침 사무실 책상에 놓인
그 편지 한통을 나는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금호갤러리
큐레이터 필자약력 1963년 서울생. 성균관대 대학원 졸업(미
술사 전공). 성균관대-경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