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내고향 뒷산에 눈이 몇자나 쌓였노. (중략) 아무도 쓸
이 없는 어머니 무덤의 차디찬 눈 . (양주동시 김순애곡 눈 ).
그윽한 저음에 황토빛 서정을 실어띄우는 우리가곡의 대부 오현명씨(베
이스)가 고희를 맞아 가곡독창회를 갖는다. 4월 13일 오후 7시30
분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그의 무대는 한국가곡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에
평생을 바친 노성악가의 황혼의 노래 가 펼쳐지는 자리. 이날 오씨
는 정진우씨의 피아노반주로 임진강 (변훈), 바닷가에서 (김성태)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백병동), 그리움 (정회갑) 등
우리가곡 12곡과 베르디 오페라 아리아 나 홀로 쓸쓸히 잠들리 (
돈 카를로)를 부른다. "작년 10월 70회 생일을 맞아 계획한 독
창회가 연주장 사정으로 해를 넘기게 됐군요. 고희라는 단어는 그래서
팸플릿에서 빼고, 대신 만주 봉천시절 친구 윤용하가 조직한 조선합창단
에서 입장료라는 것을 처음 받고 이흥렬의 비오는 밤 을 노래한 것이
1944년이니, 노래인생 50년기념 이라는 표현만 쓰기로 했어요.
" 아직 나이 때문에 노래를 망설인 적은 없다는 오씨의 나직한 음성
은 현역의 정정함 그대로다. 여전히 빛깔고운 그의 베이스에 실려 주옥
같은 한국서정시들이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가곡을 그처럼 많이 부
른 성악가도 없고, 그처럼 멋있게 노래한 가수도 드물다. 명태
한강 귀향의 날 (변훈),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 뱃노래
(김동진), 그집앞 (현제명), 기다리는 마음 접동새 (장일남
)는 그의 애창곡이자 우리의 노래다. "초연곡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어요. 변훈작곡의 명태 임진강 , 백병동곡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 정회갑곡 그리움 등이 제가 처음 발표한 노래들입
니다. 김동진선생의 51년작품 낙동강 도 제가 노래하기까지는 어느
성악가도 부르지 않았지요."오씨는 63년 한국가곡만으로 독창회를 연
최초의 성악가. 당시로서는 무척 이례적이었던 그의 가곡연주회는 67,
70, 74, 80, 84년으로 이어졌다. 홍난파에서 백병동까지,
흩어진 우리노래를 찾아 시대별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독일등 외국
의 리트에 심취했었으나 노랫말의 미묘한 뉘앙스를 객석에 속속들이 전달
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성악가와 청
중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완전하고, 또 우리의 정서가 깃든 우리가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이런 작업이 우리가곡의 보급에 나름대로 기
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오씨는 1924년 만주 무순에서 태어나 48
년 서울대음대를 1회로 졸업했다. 그해 서울 시공관에서 공연된 한국최
초의 오페라 춘희 에 단역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50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또 18년간 국립오페라단장(64~82년)으로 재직하면서
40여편의 오페라를 직접 연출하는등 한국오페라의 틀을 세우는데도 앞장
섰다. 89년 25년간 몸담은 한양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그는 지금
도 명예교수로 주1회 이 대학에 출강하면서, 일요일이면 전국의 교회를
순회하며 찬양특송을 계속하고 있다. "노래부르는 일 자체가 운동인
데다 성악의 호흡법 탓에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생활에서도
음악처럼 분수껏 살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서 택한 노래인생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공연문의 (512)9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