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균 항공기로 중국마을 살포/우물에 콜레라균 뿌려 20만중국인
희생/화상-뇌에박힌 탄환연구 미본토도 공격 일본군 731부대 의
무병이었던 올해 72세의 일본인 노인은 부인이 떡을 내오고 나가자 대
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30세쯤 된 중국남자였다. 완전히
발가벗겨 말뚝에 사지를 묶었다. 마취도 안한 상태에서 공포에 질려 눈
을 뻔히 뜨고 있는 그의 가슴부터 배쪽으로 메스를 내리그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런 소리를 지르며 그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
나 몇초만에 그의 사지는 축 늘어졌고 실험실도 잠잠해졌다. 그는 세균
폭탄 개발실험을 하기 위해 며칠전 주사기로 체내에 병균을 주입한 상태
였다. 병세가 완연해지자 인체내부에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
보기 위해 그의 몸을 수직으로 반토막낸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 세
균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일정까지 세웠다. 1945년
여름 가미카제 전투기조종사들로 하여금 세균폭탄을 탑재하고 샌디에이고에
자폭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
고 종전후 미국은 실험자료들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일본의 잔혹한 생체실
험을 불문에 부치기로 함으로써 사실이 은폐됐다. 일본은 1925년
제네바협정에 의해 세균전이 전면 금지된 직후 세균무기를 개발키로 결정
했다. 국제법으로 금지시킬 정도라면 가공할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중국대륙 대부분을 장악한 일본군은 만주 하얼빈
시 인근 8개 마을의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여기에 731부대 사령부를
설치했다. 마루타 라고 불린 실험대상자들은 대개 공산주의자들이나 일
반 범죄자들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부대원은 "부대내에 머리
, 다리, 내장 등으로 구분해 분류표를 달아놓은 시체보관용 특수유리병
이 수없이 많았는데, 이중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으로 표시
된 것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중국인, 한국인, 몽골인들의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731부대 요원들은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과 건강한 실험
대상들을 한방에 가두어 놓고 병균이 어떻게 감염되는가를 연구하기도 했
으며, 특수압력실을 설치해 사람의 눈이 어느정도 압력을 받으면 튀어나
오는지도 실험했다. 또 실험실 밖에서의 효능을 실험하기 위해 정기적인
야외실험도 병행됐다. 한번은 중국 동부와 북부내륙의 두 지역에 페스
트균을 가진 벼룩을 비행기로 대량 살포했으며 콜레라와 장티푸스 배양균
을 샘물과 우물에 살포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본군의 야외 세균전실험으
로 사망한 중국인은 20여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은 자국
군을 위한 새로운 백신이나 치료법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도 실시했다.
동상치료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대상자를 혹한의 날씨에 장기간 밖에
묶어두고 얼음물에 팔을 담그게 하기도 했으며 화상연구 뇌에 박힌
탄환연구 등 숱한 생체실험이 자행됐다. 731부대의 이같은 잔혹
한 행위를 일본왕실도 알고 있었다. 히로히토국왕 동생인 미카사는 73
1부대를 직접 방문,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독가스실험 사진들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1944년 패전위기에 몰린 일본군은 미본토에 약
2백여개의 대형 세균풍선을 날려보냈으며 이중 몇개가 서부지역에 도달
해 몬태나주에서 여자 1명, 오리건주에서 6명이 사망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미정부의 보도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1944년
엔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할 무렵, 세균무기를 실은 잠수함 한 척을 급
파했으나 도중에 격침되는 바람에 좌절됐다. 또 1945년엔 밤 벚
꽃 이라는 암호명의 작전을 실시했다. 잠수함에 소형 항공기와 가미카제
조종사들을 태우고 미본토에 접근한후 남부 캘리포니아 일대에 페스트에
감염된 벼룩을 뿌리는 작전이었다. 작전 개시일은 9월22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8월15일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731부대는 패전직전인 8월9일부터 세균무기개발 증거물들을 폐기했다
. 이후 미국이 관련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일본의 세균무기개발은 비
밀에 부쳐졌고, 731부대장이었던 이시이장군은 1959년 후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아무런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으며 그의 부하들은 종전후
동경도지사, 일본의과협회장,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