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사회당 대표성 상실"/언론들 부패폭로등 영욕 평가 1일
낮 점심시간대 샹젤리제 거리. 한 30대 남자가 불법주차했던 푸조
405 자동차에 오르다 앞유리에 붙은 벌금딱지를 찢어서 길바닥에 버린
다. 요즘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른바 선거전야
.7년마다 치르는 대통령 선거가 다음달로 다가왔다. 파리 시민들은
5공화국 첫 연임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이 불법주차 과태료를 탕감하
는 것으로 당선을 자축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벌금딱지를 찢은 남자
는 아마 "이번에도 틀림없이 "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현재 파리지역
주차과태료 납부율은 3분의1 선을 밑돌고 있다. 한불 양국은 작년
12월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문제와 관련,기한부 자동연장 대여 형태로
연말까지 기본합의를 마무리짓기로 했었다. 금년초부터 고문서를 서울로
옮기는 것은 다된 밥 이었다. 그러나 일정은 무산됐다. 실무자들은
2일의 김영삼대통령 방불에 맞춰 이 문제를 타결짓고자 "백방으로 뛰
었으나", 지난달 주불 한국공관은 한불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
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이 돼버렸다는 비공식 발표를 하기에 이르
렀다. 한 고위 외교관은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부가 "어떤 막판 결
정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들은 도대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요즘 저녁 8시 각 TV채널의 톱뉴스는 엘리제궁과 총
리실의 도청사건 연루, 리옹 시장과 그 사위의 독직사건, 미 CIA요
원 추방요청 폭로사건 등으로 얼룩져 있고, 대선 후보 중 인기도 1위
를 달리던 발라뒤르 총리가 여기저기서 사회당 리오넬 조스펭에게 밀리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뒤를 잇고 있다. 프랑스는 정권이 바뀔때 정부
부처는 물론 국영기업체 고위직들의 얼굴이 거의 바뀐다. 그 때문에 프
랑스식 엽관주의는 총선, 대선 때마다 복지부동 현상을 유발하는지도 모
른다. 미테랑은 제5공화국 출범후 첫 사회당 대통령이다. 81년 5
월10일 그가 취임하던 날 문화장관 자크 랑은 "프랑스는 빛과 암흑의
경계를 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14년, 프랑스는 빛과
암흑의 숱한 변혁을 겪었다.요즘 프랑스 책방엔 미테랑 시대를 총평하는
정치비평서로 서가가 그득하다. 그의 치적을 평가하는 책들이 많지만
게중에는 페레이라 이도망이 쓴 미테랑 치세하의 프랑스의 파산 이라는
책도 있다. 2월4일자 르 포엥지는 엘리제궁 동창생 6명의 부패
스토리를 커버기사로 다루었다. 미테랑의 비호하에 대통령 보좌관들이
저지른 부정을 파헤친 르포다. 미테랑 재임기(81~95년)중 프랑스
정치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탈이데올로기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
장경제의 논리가 석권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의 꿈 도 죽어갔다. 미테랑은
정치적 인물이다. 평론가들은 그를 호모 폴리티크 로 불렀다프랑스
시사주간 렉스프레스는 최근 미테랑 시대를 특집으로 꾸미고 사회주의자
들은 자유투사가 아니라 그저 관리자로 전락했다 고 적었다. 미테랑
치세의 둘째 변화는 권력서열의 재구성이다.그의 집권과 더불어 시작된
탈중앙화 정책은 전국의 지방자치체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했다. 서유럽의
어느국가보다도 중앙집권적이던 프랑스에 책임과 권력의 분산이 찾아왔다
. 또하나 미테랑 치세의 변화는 정당 대표성의 위기다. 사회당은 오
늘날 환경당이나 군소 좌파와 제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사회당은 유권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고, 지지자들은 서민층과 중
산층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