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핵합의 이행의 보장 방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해 윈스턴
로드 미국무차관보가 내한했다. 북한이 지난달말 베를린 미-북 전문가회
의에서 한국형 경수로를 거부한데 이어 최근 외교부 대변인이 핵합의 폐
기를 위협한 후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대북 협상에 한계
를 느낀 나머지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양보를 끌어내 돌파구를 마련하려
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미국측으로부터 이
러한 우려를 자아내게 한 언행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의 직접
거래에 반발하는 북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 기업을 중개역으로 하는
구상이 보도되었으며, 경수로 제작은 한국이 하되 미상표를 붙여 북한에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도 제시되었다. 특히 우리를 당황케 한 것은 월터
슬로컴 미국방차관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경수로에 한국에서 가져온 것
이라고 큰 글씨로 써붙일 필요는 없다"고 한 말이다. 요컨대 대북 경
수로 지원에 미국 기업이 상징적 역할을 하고 한국에는 하청업체의 역할
을 담당토록 하려는 음모로 보인다. 그런 식의 대응은 미국의 대북
핵정책에는 부합할지 모른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한두개를 갖고 있다
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현상에서만 동결하면 핵확산 금지조약(NPT) 연
장을 비롯한 핵통제를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할만도 하다. 북한 핵무기
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없는 한, 굳이 핵의혹을 완전히 불식하려는
노력으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싶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는 북이 핵무기를 반개만 갖고 있어도 비핵화
선언은 무효가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세계적인 핵군축 속에서 우
리만이 북핵의 위협에 눌려 자유와 평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을 미국 수준에서 평
가하면서 우리에게 돈과 용역을 들여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토록 설득하려
해서는 우리 정부와 국회와 언론을 망라한 전체 국민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 우리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때는 우리의 북핵정책에도
부합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말하는 한국형 경수로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의 자금과 용역으로 제작한 경수
로이면 한국형이니까 한국은 더 간여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경수
로를 제공하는 목적은 실종되고 만다. 그럴 경우엔 경수로는 미국의 돈
과 용역으로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경수로 해법의 방식이 우리 마음에
들어야만 돈도 낼 수가 있고 용역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