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랑 경계위의 미술 전 전시장 안에는 흰 진열대가 벽을 두르고
있고 진열대 안에는 약상자와 약병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방 한가운
데는 육면체의 커다란 유리상자가 있고 그 안에서는 쥐들이 불안한 뜀박
질로 돌아다니거나 한구석에 모여 쥐죽은 듯 무거운 공기를 숨쉬고
있다. 그리고 방의 네 귀퉁이에는 꿀이 담긴 사발이 놓여 있다.영국
출신 소장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설치 작품 약국 이 전하고자 하는 바
를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면 이렇다. 현대인은 고통으로부터 빨
리 벗어나기 위해 인위적인 해결책에 집착해왔고, 그것은 단 것만 찾게
되는 유혹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쥐처럼 일시적인 진정과 공포
의 순환과정을 살게 됐다. 그러니까 현대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모든 일
상적 유혹의 상징이자 그로 인한 절망의 현현이니, 약국에서 관객이 얼
핏 하얀 공포 곧 참 속에 자리한 거짓의 공포 를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섬뜩함의 틈새를 비집고 보는 이의 뇌리에 박힘으로
써 이 구석구석 공들인 진짜 약국 같은 작품은 순식간에 예술로 화한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같은 메시지의 전달도 좋지만 굳이 그것을
위해 이렇게 꼭 약국 하나를 지어야만 하는가? 이것도 미술인가?
지나친 자기유희이자 낭비가 아닌가? 하지만 이같은 전략은 현대 미술의
오랜 전통이다. 20세기초 소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내놓은 뒤상의
샘 이래 인간 의식의 경계를 흔드는 이같은 방식에 대한 작가들의 선
호는 확대-재생산 돼왔다. 경계 위의 미술 이란 표제 아래 국제화랑
(3월7일까지)이 허스트 등 6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그같은
전략이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허스트가 삶을 예술로 끌고 들어와 삶과 예술의 경계를 흔든다면, 한국
출신 코디 최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자신의 나신 형태로 뜬 코
디의 전설, 프로이드의 화장실 과 같은 작품으로 서구미술의 전통과 동
양인의 감성 사이의 벽을 파괴한다. 그런가 하면 브라질 출신 잭 러너
는 뉴욕근대미술관 소장 명작들의 이름표와 유명 미술관 이름이 찍힌 쇼
핑백을 벽과 바닥에 늘어놓아 예술의 상품화와 상품의 예술화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상품간의 경계를 허문다.이렇게 경계를 뒤흔든다는
것은 곧 인식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전지하지 않다. 새
롭고 낯선 경험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는 깨우침을 하나 얻는다. 흔듦과
파괴가 창조에 선행하는 예술창작의 제1요건임을 발견한 데 현대미술의
놀라운 성취가 있다. 경계 위의 미술 출품작들은 그 흔듦의 극을
달리는 요즘 국제미술,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미술의 조류를 성실히
반영하고 있다.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국가간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는 시
대, 또 페미니즘, 동성연애, 제3세계 문화가 중요한 이슈로 작용하는
복합문화주의 시대에 경계 허물기 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경제든 문화든 경계가 허물어지면 가장 덕을 보는 나라는 미국이다.
경계 허물기 는 현대 미국 문화의 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공기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일본 작가 유키노리 야나기의 남북한 개미 농
장 을 전시 개막일 당국에서 철거하도록 한 것은 이와 같은 경계 허
물기 흐름에 대한 현명한 대처 방식은 아니었다. 시장이든 문화든 기
존의 경계를 고집해서는 대세를 그르친다. 이 전시는 어쩌면 시시각각
급변하는 국제 흐름 속에서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 앞에 던져진 하나의
화두 같은 것이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