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도 신문사 공모 신춘문예의 마감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8일 마감한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 있을 응모자들을
위해 원고 마무리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점검한다. 또한 조선일보 신
춘문예에서 82년 시, 84년 소설부문을 골고루 석권한 문형열씨와 9
2년 문학평론 당선자 최인자씨의 신춘문예 체험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당선자 2인 체험기 *82년 시-84년 소설부문 문형렬씨/다양한
지적 호기심 "중요"/ 삶의 본질 규명 등 관심분야 넓히자 사춘기
시절 나의 꿈은 열심히 공부해서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시인이
나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나는 왜 작가가 되고 말았을까? 왜 이렇게 되고 말
았는지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운 앞날처럼 언제나 돌아보면
쓸쓸하고 황량한 날들이 행복처럼 다가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
버지가 병석에 누웠고, 나는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해선처럼 밤늦게까지 불켜진 교실과 도서관에서 학생들
이 대입시험 준비에 빠져있을 때 나는 창 밖을 보며 생각에 빠져 들었
다. 이제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
한 선물을 바치고 싶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로 써서 들려 드리기로 했다. 그게 내가 데미안 처럼 내부의
힘으로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74년 11월,
수업 시간 내내 창밖을 훔쳐보며 한줄씩 노트에 적어나가던 나는 선물
을 든 손이 무거웠다. 손이 견딜 수 없이 무거웠기 때문일까, 고등학
교를 졸업하고 군입대를 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산판에서 노동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습작시절은 노동과 함께 시작이 되었던 것이리
라. 아버지께 선물을 바치고 싶어 잘못 든 길 끝에 기다리고 있었던
황량한 시간들처럼. 스무살, 스물 한 살 .도립공원 축조 공사장에서
내가 하는 일은 산비탈에서 돌을 져나르는 일이었다. 55개의 돌을
지고 내려오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산에는 초겨울부터 눈이 날렸고 봄
에도 싸락눈이 뿌렸다. 돌을 등에 지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가면 타
는 숯덩이같은 내 얼굴이 보이곤 했다. 노랗게 핀 산수유꽃처럼 나는
돌을 등에 지고 내내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밤에는 책을 읽고 선물을
들고 있는 손을 가볍게 하고 싶어 일기처럼 기록하기 시작했다. 시,
소설 가릴 것이 없었고, 징집영장이 나오자 달아나듯 군입대를 했다.
어머니는 내 습작노트를 고물상에 5백원을 받고 팔아치워버렸다. 스물
두 살에서 스물 다섯 살까지 동부전선에 있었다. 비무장지대와 폭설,
홍수와 끝없는 지뢰매설작업 속에서 나는 사물의 엄밀한 모습을 보았다
.노동을 할 때의 내 모습도 다시 선명하고 명료하게 떠올랐다. 제대를
하고 동해 바닷길을 어슬렁거리던 끝에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나는 사
회학을 배우면서 삶의 구체적 본질을 밝혀보고 싶었다. 언어를 정확하게
쓰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무겁던 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늘 손에 들고 있었던 선물을 전해주고 싶었다. 문학은
내가 남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나는 엘리어트와 프
로스트를 좋아했다. 그리고 소월과 최승자의 시는 너무 좋았다. 김은국
의 순교자 를 읽으면서 언젠가 이 작가를 만난다면 나의 고마움을 전
하고 싶었고, 이문구의 관촌수필 을 읽으며 긴 겨울밤을 꼬박 새웠다
. 나는 두 작가에게 나의 경이로움을 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그런데 내가 작가가 되어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푸르던 날
들에 새겨진 나의 찬사와 고마움을 비로소 전할 수 있었다. 선물을
든 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거듭 쓰기 시작했던 날들이 나를 결국 작가
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시절로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스스럼없이 돌아갈 것이다. 돌을 져나르던 그 시절로. 어느 젊은 시
인은 이렇게 외치지 않았는가, 쓸쓸하여도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말없는 찬사 라고. *92년
문학평론 최인자씨/ 새로운의 욕망 을 가져라/많이 읽고 쓰고 기존
지식 벗어나야 92년 신춘문예로 등단할 때, 내가 쓴 글은 글쓰
기와 권력적 주체 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평론이었다. 한동안 신문과
문학 잡지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을 분석 비판한 것이었다. 신춘문예라면 막연히 이름있고 저명한 작
가의 작품에 대해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작품성에 대한 논쟁조차 마무리 짓지 못한 신예 작가의 첫 작품을
선택했다. 신춘문예가 중견 심사위원에 의해 선출되는 다소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상식을 뛰어넘는 신선함과 새로움
이 중시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작품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사
실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핑계하에, 평론을 한다든지 등단을 한다든
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 다만 대개의 문학이
론이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학부 시절부터 문학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 수있었을 뿐이다.
대학 4학년부터는 특히 후기 구조주의 이론에 매혹됐다. 하지만
난해한 후기 구조주의 이론 자체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방법론을 통
해 황당무계(?)한 작품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수업시간마다 노교수님들
을 경악시키는 재미를 더욱 즐겼던 것같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 사소한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혹은 띄어쓰기까지 세세하게 읽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지금은 후기 구조주의를 비롯한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기존
의 작품을 전혀 다르게 보는 법, 그리고 소외된 것에서부터 바라보는
법을 이러한 문학 이론 공부에서 배웠다.특히 평론을 하고자 하는 사람
이라면, 다양한 문학 이론속에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나 소설이 아닌, 평론이라고 할지라도 단
순한 이론이나 명쾌한 논리만 가지고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욕
망이 있어야 한다. 경마장 가는길 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무언가
를 토해내고 싶은, 구역질같은 욕구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J
를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부터 페미니즘에 경도
된 탓이었을 것이다. 갇혀버린 여성, 말 못하는 여성이 졸업 논문의
주제였는데, 바로 그 여자의 모습을 경마장 가는 길 에서 발견한 것
이다. 그래서 평론의 제목도 처음에는 경마장 가는 길에 있는 여자
였다. 지금 와서 그 당시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지나치게 많은 부호
를 사용하고, 반복되는 문장이 많은 것 등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로운 시각과 작품 해석을 담고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글쓰기와
글읽기는 항상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라고 할 수있다. 많은 글을 읽
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음으로써, 나의 글쓰기가 방해받는 수도 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도 평론은 많은 양의 글읽기를 요구한다. 많이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평론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평론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을 것
이다. 중요한 점은 오히려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에서 어떻게 벗어나느
냐이다. 그러므로 신춘 문예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자격은 바로 이것
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움. *마무리요령 주의사항 ①겉봉투에
붉게 응모부문 적어야 ②원고 맨 앞이나 뒤에 연락처 기재 ③ 경력
은 첨부말고 원고는 묶어서 ④문학의 기본틀 반드시 유지해야 조선
일보 신춘문예는 시, 시조, 동시, 단편소설, 희곡, 동화, 문학평론
, 미술평론 등 8개부문에 걸쳐 원고를 모집한다. 응모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될 사항은 겉봉투에 붉은 글씨 로 응모부문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총응모작이 7천여편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지는 실정이므로 신문사의 원고 분류작업에 도움을 주는 것
도 응모자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원고
의 맨 앞이나 뒷부분에 본인의 연락처를 적는 것이다. 응모편수가 많은
시와 단편소설의 경우 심사위원들은 겉봉투를 뜯은 뒤 원고를 읽어내기
바쁘므로 그 수많은 겉봉투를 따로 보관할 수 없다. 따라서 응모자
들은 겉봉투에 본인의 주소를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원고 속에
본인의 전화번호 또는 연결 가능한 가족, 친지의 전화번호를 명기해야
한다. 몇해전 모신문사의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서 당선자가 나왔으나
, 원고의 어느 부분에도 연락처가 적혀있지 않아 아쉽게도 당선자를 찾
지 못한 경우가 있다. 또한 원고는 반드시 철해야 한다. 단편소설
분야에서 간혹 낱장으로 된 응모작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응모작이 당
선되기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원고 이외의 다른 글이나 문서를 덧붙
이지 않는 것이 좋다. 일부 응모자들은 원고외에 자신의 학력과 사회활
동의 경력을 과시하는 듯한 이력서를 첨부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문학상 수상경력을 명시하기도 한다. 그동안 몇번 낙선했는데 라는
편지를 동봉한 읍소형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응모자들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문학의 기본적 틀을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술집에서 만났다면, 여기, 술 두병 주세요 같은 문장
은 안써도 되는 문장이다. 소설 독자(심사위원)는 그들이 술집에서 만
난 것과 그 이후의 사건전개에 관심이 있지, 그들이 술을 몇병이나 마
시는가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박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