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위장 시한폭탄 제거-비행장 복구/전후엔 광산-공장 등 노동자
로 계속 동원/억류 8만여명중 2~3만명 살아있을듯 북한은 6.25
때 국군 포로들로 별도 부대를 편성, 세뇌교육을 시킨뒤 비행장, 철도
복구공사등에 동원했으며 휴전후에는 이들을 최하층 신분으로 분류해 탄
광이나 공장의 노동자로 투입했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인민군 소속으로
한국군 포로들과 같은 부대에 근무한뒤 66년 귀순, 북한전문가로 활동
하고 있는 이항구씨(소설 김일성 저자)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이씨가 직접 목격한 미송환 포로들의 실상에 관한 증언내용이다. 나는
6.25중에 월북해 황해도 봉산 소재 서울정치학원 을 졸업하고 중
앙당 서울지도부 재정경리부 지도원으로 일하다 51년 숙청당했다. 그래
서 간곳이 영변 약산동대에 있던 조선인민군 제22여단 이었다. 지금
의 핵단지가 있는 곳이다. 이 부대는 51년10월9일 창설됐으며 간부
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로들이었다. 나는 중사계급을 달고 정찰중대의 분
대장을 맡았다. 당시 이 부대의 여단장은 국방경비대 총사령관을 지낸후
50년 월북한 송호성이었고 정치부장은 남로당계의 거물이었던 한철이었
다. 그아래 대대장은 강태무 표무원등이었는데 이들도 남쪽에서 군부대를
이끌고 월북한 사람들이었다. 훈련은 주로 정치 사상교육에 중점을 두
었다. 포로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6~8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22여단은 해체되고 부대원들은 몇군데로 나누어졌다. 내가 간곳은
인민군 584군부대였다. 이 부대는 철도복구를 주임무로 했으며 산하의
3개여단 병력은 모두 포로들이었다. 사령관은 팔로군출신의 김주봉중장
이었다. 여단병력들은 최전선에서부터 최후방까지 철도변을 따라 배치됐고
수시로 옮겨 다녔다. 당시 유엔군은 철도를 마비시키기위해 시한폭탄
을 투하했다. 이 폭탄은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철로변 땅속 깊이 박혀
있다가 수시로 폭발했다. 이걸 제거해내는 것이 포로들의 임무였다. 땅
속 1~2m에 박힌 폭탄을 캐낸뒤 논밭으로 가져가 폭발시키는 일이었다
. 4~8명이 한조가 돼 일을 했다.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다가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버려 그야말로 죽음의 작업이었다.
매일 수없이 죽어 나갔다. 한사람이 대개 5번째 작업을 넘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국군포로들로 편성된 또하나의 부대는 218군부대였다
. 이 부대는 비행장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평양, 신의주, 황해도 온
천과 황주등 4군데 비행장이었다. 포로들은 모두 인민군 복장과 계급장
으로 위장했다. 미군이 공중촬영을 하더라도 포로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언제 미공군기의 폭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일해야하는 비행장 복구작업도 철도작업 못지않게 위험했고 희생자
가 속출했다. 북한은 전쟁이 끝난뒤 국군포로들을 제대시키기 시작해
56년에 완전히 정리했다. 이들은 해방전사 라는 딱지가 붙어 사회로
나갔지만 대부분이 광산, 협동농장, 공장등에 배치돼 힘든 노동을 계
속해야 했다. 나는 제대후 북한 중앙방송의 기자가 돼 방방곡곡의 산업
현장을 취재하러 다니면서 해방전사 들을 많이 만나볼수 있었다. 모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흥남비료공장에서는 나와 휘문중학 44회
동기생인 안건영과 유만식을 만났다. 이들은 포로가 된뒤 218군부대
에 배치돼 온천 비행장에서 일하다가 제대후 노동자로 이 공장에서 일하
고 있었다. 내가 218군부대에관해 자세히 알게된 것도 그들로부터였다
. 북한에 포로가 됐던 국군들은 대개 3가지로 분류됐다. 첫째가 현지
부대에서 바로 전투나 정찰등에 투입하는 것으로 조창호씨는 이경우였던것
같다. 두번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건설부대에 투입되는 것으로 이
숫자가 가장 많았다. 마지막이 평북 벽동군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경우였다. 휴전후 송환된 포로는 대부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사람들이
고 나머지 두 경우는 거의 돌아오지 못했다고 본다. 6.25때 북한
에 포로가 된 사람은 8만2천~8만7천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송
환된 사람은 불과 7천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에 억류된 8만명가량
의 포로중 약 2만~3만명이 전쟁중 사망했고, 휴전후 지금까지 약 3
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대략 2만
~3만명가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리=김현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