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부터 여성들 멋내기 경쟁 쌍꺼풀수술까지 유행/7부소
매-나팔식치마 인기/옷감귀해 평양특권층 한정 89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북한주민들의 패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 참가자들의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자유분방한 패션은 그 들에겐
충격 자체였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평양여성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멋내기 경쟁을 촉발했다. 여성들은 귀고리, 목걸이, 브로치등 장신
구착용을 당연스레 여기게 됐다. 옷의 색깔도 화려해졌다. 80년대 중
반까지만해도 일반적이었던 검정통치마에 흰저고리차림이 평양등 대도시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86년 김정일이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조
선여성의 아름다운 풍모가 없어진다"고 지적한 이후 바지차림도 사라졌다
. 대신 색깔있는 달린옷(원피스)과 나뉜옷(투피스)이 등장했다. 블라
우스와 스웨터 역시 멋쟁이 여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여기에 동유럽
영화배우를 본뜬 헤어스타일과 쌍꺼풀수술까지 유행했다. 여성의 노출은
성적 욕구를 자극하고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억제돼 왔었다. 그러나
82년 김일성이 최고인민회의에서 "여성들이 대담한 노출을 한다고 해서
사회주의생활양식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며 새로운 패션관을 교시
하면서 규제가 완화됐다. 이후 노출은 점차 대담해져 최근에는 7부소매
셔츠에 종아리를 드러내는 나팔식 치마가 가장 인기있는 옷차림으로 알려
져 있다. 남성도 80년대 중반이후 30여년 이상 입어 오던 인민복을
벗고 외출때는 양복차림으로 나선다. 양복감은 주로 합성섬유인 비닐론
이나 아닐론. 또 결혼식때 신랑은 테트론 양복을 입는 것을 최고로 친
다. 북한은 90년대 들어 주민들 옷차림의 변화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 패션디자인 현상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하고 패션화보 옷차림 을 출간
해 주민들에게 철따라 장소따라 멋부려 입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92년 원산에서 열린 디자인 공모전에서는 원색의 달린옷(원피스)에
나리꽃등 꽃무늬를 가슴 소매 치마자락등에 수놓은 여성복들이 인기를 끌
었다. 대중월간잡지 천리마 나 조선여성 등은 체형에 맞게 옷입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키가 크고 몸이 약한 여성은 허리선을 약간
올리고 치마는 아래로 퍼진 형태가 좋고, 키가 작고 몸이 가는 여성은
연한 형태보다 화려하고 눈에 얼른 띄는 장식의 옷을 입는 게 어울린
다"는 식이다. 그러나 멋부린 옷차림은 아직 평양등 대도시의 특권층
부인이나 딸들에게 한정되는 얘기다. 다양한 옷감과 옷의 공급이 이루
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서민이나 농촌지역 여인들은 여전히 구하기
쉬운 검정색과 국방색 옷을 입고 있다. 패션디자인의 수준도 아직은 낙
후돼 있다. 패션디자인을 가르치는 곳은 평양상업대학에 의상학과가 있을
뿐이다. 김연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