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감독의 태백산맥 은 어느 편에 유리한 영화냐 는 이념 논쟁
을 무색하게 하는 대작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제작사인 태흥영화사는 영
화가 완성된 4일 임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진들과 기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영화진흥공사에서 비공식 시사회를 열고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 영화를 처음 공개했다. 광복 직후로부터 6.25에 이르는 시기
에 전남 벌교 일대에서 빚어진 좌-우익 대립의 아픈 역사를 다시 보여
줌으로써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그 대답은 이 영화의 끝
부분, 후퇴하는 빨치산 염상진(김명곤)이 좌도 우도 아닌 민족주의자
김범우(안성기가 맡은 이 배역은 영화속에서 감독이 가장 긍정적인 시선
을 보내는 인물이다)와 맞닥뜨려 나누는 극적인 대화에 분명히 들어 있
다. 김범우="당신은 실패했어." 염상진="나는 아직도 마르크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소(중략).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데 ." 김="그러기엔 당신 손엔 피가 너무 많이 묻어 있어."
염="반동의 피요." 김="반동이기 이전에 인간이야. 인간의 증오에
기초하는 어떤 이념도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어 ."김범우가 공
산주의쪽으로 기우는듯한 조정래의 원작과는 사뭇 다르다. 원작에도 없는
이 대사를 통해 감독은 김범우의 입을 빌어 "좌도 우도 모두 사람
을 떠난 이데올로기 에 집착해서 우리가 옹호해야 할 진정한 이상을 잃
어버린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다. 감독은 좌익의 숙청도 우익의 보복에
도 똑같이 고발의 카메라를 들이댄다. 우익의 경우만 봐도 빨치산의
아내를 겁탈하는 청년단 감찰부장 염상구(김갑수)처럼 부정적인 인물도
있지만 계엄사령관 심재모같은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인사의 모습도 얼마든
지 있다. 악인같은 염상구에게조차도 자신이 짓밟은 외서댁에게 슬그머니
생활비를 보태주는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엔 또
좌든 우든 어느 편에도 들 수 없이 숨죽이고 광풍의 세월을 버텨오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학살당한 마을에서 씻김굿을 하는 소화(
오정해)의 진혼곡같은 무가가 스크린에 덮이고, 김수철의 주제 음악이
가슴을 파고드는 라스트는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그동안 말을 삼가던
임권택 감독은 영화가 끝나자 이렇게 한 마디했다."이 필름은 특이하
게도 우익 인사들만 불만을 가질 영화가 아니라 좌파들이 봐도 기분 나
쁜 대목이 많아요. 그러니 개봉이 되면 양쪽에서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
어요. 공개도 되기전 시비가 이는 것을 보니 이념 대립의 상처는 아직
도 아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명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