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정명훈씨의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파리 중심가 몽테뉴.
정씨가 밤 8시 뉴스 때문에 문밖에서 성화인 프랑스 TF1-TV
기자를 만나러 잠시 일어선 사이 모니크 펠르티에 변호사가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 그녀는 얼굴이 온통 주름 투성이인 할머니 변호사였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이 아니라면 손에 든 서류도 잘 안 보일듯 했다.
한국 기자들은 펠르티에 변호사에게 첫마디로 "축하한다"는 말을 꺼내려
다 망설이고 말았다. 이날 급속심리 결정에 따라 프랑스 사법부로부터
음악감독 지위를 당당히 확인받은 정명훈씨에겐 "정말 축하한다"는 첫
인사를 건네면서 스스럼없이 손을 잡았는데, 그의 변호를 맡았던 펠르티
에 변호사에겐 왠지 어색했다. 이 어색함을 깨겠다는 듯 펠르티에 변
호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결정은 프랑스 사법부의 제1단계 판
결입니다. 그동안 부당하게 대우받아온 정씨가 법률적 지위에 따라 아직
도 엄연한 파리오페라 음악감독이라는 점을 확인해준 것입니다." 펠르
티에 변호사는 웃음기 가신 얼굴로 또렷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프랑스인입니다. 정명훈씨에 대한 처우가 비이성적이었다는데 큰 고통을
느낍니다." 프랑스인 변호사로서 외국인 음악가를 위해 프랑스의 공공
공연단체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인 뒤끝이었다. 어색함의 원인은 펠르
티에 변호사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8월12일 극장측이 일방적으
로 발표한 계약 파기 성명은 법적으로 따졌을때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다시 입증됐다"는 변호사 설명이 끝나고 정명훈씨가 다시 들어왔다
. 정씨의 부인 구순열 여사의 손엔 한 축하객으로부터 받았음직한 꽃다
발이 들려 있었다. 정명훈씨가 무대 위에서 받은 꽃다발은 꽃가게를 여
러개 차려도 남을 만큼이겠지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꽃다발을 받기는 이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었다. 정명훈씨의 생각은 명료했다. "신
임 극장장 내정자인 위그 갈씨는 극장 식구들이 모두 그 자신을 위해
일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장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은 바
로 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를 따를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
5년동안 오페라를 위해 정열을 쏟은 것이지 프랑스를 위해 일한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오직 음악밖에 모르고, 고작 취미라곤 집에서 음식
만드는게 전부 인 정명훈씨의 예술적 논리체계는 최근 빚어지고 있는
한불양국의 문화적 갈등관계를 초월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인터뷰를
끝내고 펠르티에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자 샤넬, 웅가로, 기라로슈,
발렌티노, 크리스찬 디오르 등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세계적 일류 패션점
들이 몰려 있는 몽테뉴가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김광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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