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정해영기자" 86년10월 어느날 밤 올드리치 에임스는 로마
시내에 있는 소련대사관 문을 두드렸다. 이곳 KGB(소련 비밀경찰)
책임자인 블라디미르와 보드카를 몇병 비우면서 밤새 얘기를 나눴다.
당시 에임스의 직책은 CIA(미중앙정보국)의 서유럽담당 정보책임자.
이미 이중간첩으로 소련에 정보를 넘겨 온 에임스가 자신의 신상문제를
논의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에임스는 CIA가 내부에 소련 간첩이 침
투했다는 의심을 갖고 배신자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블라디미르에
게 보고 했다. 두 사람은 에임스에게 쏠리는 CIA의 수사 초점을
흐려 놓기 위해 통신 보안의 허점으로 정보가 소련에 새나가고있는 쪽으
로 일을 만들기로 했다. 몇주일뒤 모스크바에 신축중인 미대사관의 통
신시설에 구멍이 뚫렸다. 대사관내 CIA지부 통신망도 수신에 문제가
생겼다. 대사관 경비병인 클레이튼 론트리 하사관이 소련이 도청장치를
하도록 도와 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소련이 꾸민 공작이라는 것을 미국
은 몰랐었다. 뉴욕 타임스지는 28일 미정보사상 최대의 이중간첩인
에임스(53)가 어떻게 해서 소련 앞잡이가 됐는지 그 경위를 보도했고
31일에 발간되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에임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게재할 예정이다.에임스가 CIA를 배반하고
소련을 위한 이중간첩이 된 시발점은 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시 유엔주재 소련 대표단의 활동을 추적하는 일을 맡고 있던 에임스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뉴욕지국장인 토머스 코레스니첸코를 매달
한번씩 만나 정보를 수집했다. 코레스니첸코는 3년간 에임스를 커피숍
이나 레스토랑,술집등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도 그가 CIA 요원인 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에임스는 코레스니첸코와 접촉하면서 서서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물이 들었고 CIA의 세계관과 해외공작을 경멸하
게 됐다고 한다. 81년 멕시코시티 지부로 자리를 옮긴 에임스는 8
3년까지 중미에 공산주의 침투를 막는 공작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멕시
코에서 소련 정보요원들과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면서 소련 지도층이 CI
A가 공산당 군부 행정부등 모든 소련 권력기구에 침투해 있다는 잘못된
망상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미소 첩보전이 보다 균형이 잡혀 CI
A가 소련 사회를 전복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소련 지도층이 깨달아
야 미국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나름대로 했다.
에임스는 소련에 침투한 미스파이 명단을 소련측에 슬쩍 넘겨 주곤 했다
. 83년말 대적 첩보책임자로 CIA 본부에 돌아온 에임스는 자신의
이같은 대소련관이 상관들에 의해 배척되고 심지어 스탈린주의에 빠졌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음을 알았다. 84년 에임스는 워싱턴 주재 소련대
사관을 방문해 소련 관리 한명을 매수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드디어 소련 앞잡이로 암약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 85년 4월 그는 소련대사관을 몰래 찾아가 "5만달러만 내놓으면
CIA에 협조하고 있는 소련인 명단 일부를 KGB에 주겠다"고 제의했
다. 그는 몇달뒤 자신이 알고 있는 CIA및 다른 국내외 기관들이 고
용한 소련 첩자의 신원을 모두 KGB에 자진해서 넘겼다. KGB는 그
대가로 2백만달러를 10년간 나눠 주겠다고 약속했다. 에임스의 제보
로 소련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 일급 스파이들은 하나씩 체포,수감,처형
됐다. 그 사이 에임스는 87-89년에 로마에 근무하면서 일급 CI
A 비밀 서류들을 모스크바에 넘겼고 KGB는 그의 계좌에 한번에 최고
37만5천달러까지 입금하는등 꼬박꼬박 사례했다. 89년 가을 워싱턴
으로 돌아온 에임스는 CIA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대저택을 일
시불로 54만달러를 현찰로 주고 구입했다. 스위스와 국내 여러 은행에
1백50만달러를 분산 예금시키고 돈세탁도 했지만 그는 여행등에 분에
넘치게 돈을 뿌렸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CIA가 그의 돈 씀씀이
에 의혹을 갖고 내사를 하고 있는데도 에임스는 지난 2월 체포될 때까
지 4년간 KGB에 CIA 비밀 문서들을 계속 넘겨 주고 돈을 받아왔
다. 꼬리가 너무 길어 잡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