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우 전중앙박물관장 10주기 추모선집/건축-불상-석탑-청자-회화등
망라/유고집 5권서 단문백50편 엄선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후세에 한국미의 본령을 일깨우는 지남(지남)이 됐다.
생전에 한국의 미와 자연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설자로 평가됐던 혜곡
최순우 전국립중앙박물관장(1916~1984). 최근 들어 전국의 산하
와 역사, 문화를 기행, 혹은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한 책들이 독서가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의 10주기를 맞아 혜곡
이 남긴 한국 문화재 산책의 정수들만을 모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간)가 출간됐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었다. 무량수전, 안양문,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
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
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
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 에서) 92년 혜곡
의 모든 유고를 모은 최순우전집 이 전5권으로 발간된 적이 있지만
이번의 무량수전 은 그중에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함축적으로
한국미의 본질을 해설한 단문들만을 골라 모았다. 건축 불상 석탑 공예
청자 분청사기 조선회화 등 20개 장으로 나눠 1백50편을 수록한
이책을 보면 한국미술사를 빛내는 수많은 보물들이 그의 손끝을 빌려 비
로소 생명을 얻는 것만 같다. 우리 미술사의 이해에 혜곡의 해설이 필
요한 것은 당대 최고의 심미안에 군더더기 없고 유려한 글솜씨가 겸비됐
기 때문이다. "그처럼 신기한 천연색 사진으로도 잘 구워진 고려청자
의 맑고 조용한 푸른 빛의 아름다움을 재현할 수 없다. 제아무리 희한
한 물감이라도 고요와 사색에 사무친 고려청자의 아득하고도 깊은 빛깔을
그처럼 물들일 수는 없다. 높고 푸르고 또 맑은 하늘, 이것은 고려
의 하늘이었고 이 하늘을 우러러 부러울 것이 없는 고려 사람들이었다.
고려사람들은 이 하늘을 우러러 무수한 기도와 소망을 가다듬어 왔고,
고려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이 맑고 조촐한 하늘색이 물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려청자 상감 운학문매병 에서) 근대 이후에도 나름대
로 한국미의 본질을 정의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일본인 야나기 무
네요시(유종열)에게 그것은 한의 미학 이었고, 국문학자 조윤제에게는
은근과 끈기의 미학 이었으며, 미술사학자 고유섭에게는 무기교의
기교 에서 오는 아름다움이었다. 혜곡에게 그것은 자연과의 조화 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이같은 그의 생각은 이 책 곳곳에 담담한 아름
다움 , 겸허와 실질 , 의젓하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아름다움 ,
그윽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 고요한 익살의 아름다움 , 무심하고
도 순정적인 아름다움 등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재발견도 기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한말 서울에
왔던 구미인이나 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먼저 시작됐고, 그래서 수만 수
십만점의 우리 문화재들이 국외로 유출돼야만 했던 역사의 아픔을 서술하
는 대목에선 혜곡의 문장도 숙연해진다. 대학에서 문화재 분야를 전공
한 것도 아니요, 개성 송도고보를 졸업, 개성박물관에 취직한 이래 4
1년 동안 박물관에서만 인생을 보낸 혜곡이기에 그의 문화재에 대한 애
정이나 안목,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
태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