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위험없는 서민출신 영수/ 리모컨정권 비판속 롱런예상도 "
동경=부지영기자" 25일 오후 이뤄진 하타(우전자) 신일본총리의 대
관식 은 예상대로 압승으로 끝났다. 작년 호소카와(세천)전총리의 총리
지명이 중의원에서 겨우 과반수를 넘은데 비하면 더욱 그렇다. 사회당
좌파의 반란-불참표는 4표정도에 그친 반면, 와타나베 탈당파란시 자민
당을 탈당한 신당 결성파가 모두 하타 지지로 선회했다. 중의원 1차투
표에서는 과반수를 훨씬 넘은 2백74표를 얻은데 이어, 사회당이 상당
한 세력을 점하고있는 참의원에서조차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넘어 하타
총리 가 확정됐다. 이같은 하타의 압승은 오자와의 표마무리 작업에도
공이 있지만, 국회주변에서는 하타 였기에 이런 안정득표가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호소카와가 총리 사임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밝힌
것이 약 3백만엔(원소득 2천9백만엔)의 세금누락신고였듯, 다음총리
에게는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투명성 이다. 이날 총사직을 한 호
소카와 내각은 임기 2백60일로 전후 6번째의 단명내각으로 기록됐다.
하타마저 비슷한 정치비리에 걸려 단명으로 끝난다면 연립정권의 앞날은
물론 유동화하고 있는 일본 정치판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하타는 일본판 보통사람 이다. 아버지의 지반을 이어 정계
에 들어온 2세 의원이지만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평범성 에 대
해 이야기를 한다. 버스회사의 티켓 창구 직원에서 시작해 기획과장까지
약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한 하타는, 그때부터 "술자리가 끝나면
다들 택시 태워주고 혼자 지하철 타고가는 서민파"였다. 귀족출신 호소
카와의 총리 취임 첫마디가 천명 운운이었던데 비해 하타의 첫마디는"미
숙한 몸이 떨립니다"였다. 하타는 두번 농림수산장관을 지내고 대장성
장관을 한번 지낸 경력치고는 돈도 별로 없는 편이다. 나가노의 생가와
임야 약 5천7백만엔에 우편저금 70만엔 국채 4백만엔 정도. 호소
카와의 10분의 1도 안된다. "당수는 돈을 좀더 내야한다"는 파벌간
부에게 "돈이 문제라면 딴사람 당수 시켜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
다. 인간 하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그의 검소한 가
정생활. 지금도 동경 국회의사당 뒤 구단의원숙사의 방 3개짜리 의원기
숙사에 가족과 함께 살고있다. 오타큐 버스회사 시절 친구의 소개로 만
나 3개월만에 연애 결혼에 골인한 부인 야스코(완자.54)와는, 애처
가 스토리도 많다. 장남의 증언."어머니가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아버
지가 요리를 해주곤 한다. 어머니에게는 죽을 정성스럽게 끓인뒤, 우리
에게는 남은 것으로 고구마나 오믈렛등 잘하는 요리 10개 정도를
해준다." 그의 건강유지의 비결 하나. 최근 인기를 타고 있는 야채
수프를 즐겨하고 정계개편의 주역이 된 작년부터는 잠자기전에 좌선을
하고있다. 그가 사귀는 사람의 폭도 넓다. 작년 9월에는 고등학교 동
창인 작곡가의 요청에 따라 에이즈 박멸 자선 음악회에서 지휘봉을 잡았
다. 풍부한 인맥으로 국제파로도 통한다. 폴리 미 하원의장,돌 미 공
화당 상원 원내 총무, 린 미 농무장관등등이 그의 외국인 친구. 한국
과의 과거 청산과 사과에 대한 그의 확고한 집념도 한자도 안틀리게
그대로 호소카와 정권때 실현됐다. 그의 이름인 쓰토무(자)는, 일본의
한 유명한 철학자가 부지런히 일한다 는 의미인 시시(자자) 에서
따 붙여준 이름. 이점에서 하타정권은 일단 제2의 호소카와식 스캔
들의 위험 없이 개혁을 진행시킬 부지런한 버스회사 출신 총리 를 준
비한 셈이다. 25일의 표분석을 토대로 볼때 하타정권은 잠정정권이 아
니라 본격정권으로서 롱런할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시나리오를 오자와가 써주는 제2의 리모트컨트롤 정권이라는 비판과,
언제 재연될지 모르는 사회당 등 연립내 내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