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아-태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기 직전
의 일이다. 해외출장을 준비하던 재무부의 한 공무원과 경리담당간에 항
공권 구입을 둘러싸고 작은 실랑이가벌어졌다.이공무원은민간여행사를 통해
값싼 항공권을 구입하겠다고 주장한 반면,경리담당 부서는 직접 항공권
을 구입해 주겠다고 맞선것. 이 공무원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똑같은 항공사의 티켓이라도 민간여행사를 통해 구입하면 1천20달러면
충분한데, 정부가 항공사에서 직접 구입할 경우 1천3백달러이상 지불해
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공무원은 그러나 규정을 들먹이는 경리계의 강
권 에 못이겨 끝내 3백여달러나 더 비싼 항공권을 받아들었다. 이런
일은 총무처의 비국제적인 규정에서 비롯된다. 총무처는 국내 항공산업
육성 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명분을 내세워 국내 항공사들과 단체계약을
맺어버렸다. 공무원은 반드시 국내 항공기를 이용하고, 항공권구입은
부조리발생을 막는다는 이유로 민간여행사가 아닌 항공사를 직접 통할
것을 정부 지침으로 못박은 것.항공사측은 공무원에게는 10% 할인혜택
을 준다고 선전하지만, 할인 요금이 민간여행사보다 오히려 더 비싼 실
정이다. 만약 각 부처가 이 지침을 어기면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된다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결국 공무원들은 값싼 외국 항공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국내 항공기를 탈 경우에도 민간여행사의 다양한 할인혜택을
받지 못해 국민의 세금부담만 가중시키는 꼴이다. 외국도 공무원들은 대
개 자국기를 이용하지만, 우리는 더 줄일 수 있는 출장비용을 행정편의
주의적 규정때문에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국제화를 외치면
서도 정부가 불합리한 규정이나 관행을 안고 있는 사례는 많다. 해외
주재 대한무역진흥공사 직원들은 감사를 받을때 "왜 국산차를 놔두고 외
제차를 타고 다니느냐"고 추궁받으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한다. 해외에서
판촉활동을 할 경우 그나라 승용차를 타주는 것이 에티켓처럼 되어있는
관행을 너무 무시하고 애국심만을 강요한다는 얘기다. 공무원 해외 유
학을 장려한다지만 공무원 임용령상 자비유학의 경우엔 유학기간중 월급을
한푼도 안주고 경력도 절반만 인정해주고 있다. 국비나 외부 장학금을
받는 해외유학의 경우 봉급도 받고 경력까지 모두 인정받는 것과는 상
대적으로 지나치게 불리한 실정이다. 공무원의 해외여행 자유화도 나아진
게 없다. 외국대학이나 기관으로부터 경비제공을 조건으로 휴가철에 세
미나나 강연에 참석해달라는 요청도 우리 공무원들에게는 그림의 떡 일
뿐이다. 상관들의 도장을 수없이 받아야 하고, 그때마다 "밖으로만
나도는 거냐"는 뼈있는 농담을 들어야하는 실정이다. 국민들에게 국제화
를 교육하기 앞서 비국제화된 규정과 관행을 정부 스스로가 정돈해야할
것같다. 강효상.경제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