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용정서 "돌아가지 않겠다" 혀깨물어/"굶주림-처형만이 통
치수단/남조선가서 증언하려 도망" 한국 기업인집 은신 서울대 문리
대 중문과 2학년에 재학 중 월북했던 북한 탈출자 박영세씨(51)는
탈출5일만에 한줌의 재가 되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갔다. 30년만에 탈
출해 북한의 폭압과 굶주림을 같은 민족에게 고발 하겠다는 그의 꿈은
끝내 중국의 한 어둡고 음산한 수용소안에서 좌절되고 만 것이다.
그가 연변 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에서 20㎞쯤 떨어진 용정앞길에 나
타난 것은 지난 2월16일 새벽. 북한의 변경지역인 함북 회령에 살던
박씨는 이틀전인 2월14일 아침 부인이 직장에 출근한 뒤 집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낮에는 산속에 숨고 밤에만 걸어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는 조선족 택시운전사에게 갖고 있던 낡은 구소련제 시계 두개중
한개를 주고 "남조선사람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여름옷 겹겹
껴입어 연길시내에 사는 한 기업인집에 도착한 그는 월북하기전 어머
니와 함께 서울대교복을 입고 찍은 낡은 사진과 북한공민증을 내보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에게 도움을 준 기업인은 "집안으로 들어서는 그
는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겨울철인데도 찌들고 냄새나는
여름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었다. 그는 급히 차려준 두그릇의 밥을 정신
없이 먹으며 고등어는 25년만에, 김은 30년만에 먹어본다고 했다.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남한에 가서 세상에 북한과 같은 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아내와 1남2녀를 두고 도망했다는게 그가 털어놓은
탈출동기다. 그는 "배고픔과 처형이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통치의 수단
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민자당 김덕룡의원의 경복고, 서울대
문리대 2년 후배라는 그는 "김선배의 학생회장 선거운동을 도와준 기억
이 난다"며 "동창들 이름을 다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그를 도와
준 기업인 가족들과 탈출성공을 기념해 기념사진도 찍었다. 월북아버지
찾아 입북 그러나 18일 새벽 기업인집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숨어있다 중국공안경찰에 체포됐다. 그 기업인도 한때 연행됐다가 풀려났
다. 그는 용정 모화산근방의 용정간수소(미결수 수용소)에 연행된후
조사를 받던중 북한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혀를 깨물어 자살했다. 그의
사체는 화장돼 북한에 송환됐다. 64년5월 대학 2학년때 월북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일본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그는 곧바로
김일성을 면담했고 김일성대학 영문학부에 편입해 학교를 다닐정도로 환
대를 받았다고 한다. 2면에 계속 1면서 계속 수리조합의 말단
직에서 근무하던 그의 부친은 의거 입북 한 아들 덕에 중앙부서로 자
리를 옮겼다.박씨의 평탄했던 북한생활은 72년 그의 출신성분이 문제가
되어 평양의 중앙부서에서 함북의 남포탄광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끝이
났다. 그때부터 막장의 탄부나 서무과직원등 광원신세를 벗어나지 못했
다. 그의 아버지는 74년에, 어머니는 75년에 사망했다. 북한 탈
출자는 91년부터 눈에 띄게 증가해 한-중 국교가 수립된 92년과 9
3년에는 매년 수백명단위로 늘어났다. 북경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공
식적으로 망명을 신청한 북한 탈출자는 현재 1백여명. 동북 3성의 조
선족과 한국기업인들은 전체 탈출규모를 1천명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탈북자 들은 중국각지에 살고있는 수만명의 조교 (북한국적의 중국거류
민)와 특무 (북한 공작원)들의 감시를 피해 한국으로 갈수 있는 길
을 찾고 있는 것이다. 취재팀이 13일동안 동북3성의 각지를 다니면
서 만나거나 확인한 탈북자는 박씨경우 외에도 굶주림에 못이겨 3살난
아기를 두고 도망온 20대 여인, 특수부대군인, 금강산 사진사, 10
대의 형제근로자, 의과대학생 등이었다. 대부분이 20-30대 젊은이
들이었고 배고픔과 갈수록 심해지는 탄압이 탈출동기였다. 중국의 개방
이 못사는 북한사람들을 흡인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거기에 한-중 국교
수교후 북한의 변경지방을 드나드는 수많은 조선족 보따리장수를 통해 한
국의 잘사는 형편이 북한에 알려지면서 탈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이 현지인들의 말이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특별취재반을 중국-
북한 국경지역에 파견, 최근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 탈출자들의
실태를 취재했다. 탈출자의 규모는 어느정도이며, 어떻게 국경을 넘을수
있는지,탈출후 이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등을 현장중계한다. 편
집자주 특별취재반 도준호북한부장 김연광월간조선기자 허
영한사진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