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부터 1일까지 미국을 방문한 한승주외무장관의 방미목적은
한미간의 북한 핵문제협의였다.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국무,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 등이 면담회담 대상자였고, 주의제도 유엔안보리에 회부된
북한핵이었다. 한장관은 이 기간중 북한 핵문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
는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와의 면담을 여러차례 시도했다
. 겉으로 밝힌 이유는 한국 자동차 시장개방문제 등에 관한 통상협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 스스로 얼굴
이 벌개질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모습 이 감춰져 있었다. 12일부터
15일까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는 작년12월15일 최종 타결된 우루과
이 라운드(UR)최종의정서 서명식이 열린다. 우리사회 일부는 이를
쌀시장개방에 관한 항복문서 쯤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새로운
국제통상질서에 적응키 위한 우리나름의 참여선언 이라는 적극적 의미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김량배농림수산부장관의 경질까지 불러온
UR의정서 수정파동 이 국내보다는 국제무대에서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 지금 제네바나 워싱턴 등지에서는 국제통상질서에 참여하려는 한국의
자질시비 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한국이 당초 합의를 무시하고 각
품목별 관세인하 등의 계획을 담은 양허표 의 수정을 꾀하려 하다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자, 흥분한 일부 GATT(관세무역 일반협정)회원
국들은 "모로코회의에 한국대표단을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까지 주장
하는 등의 강경분위기가 걷잡을 수없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정이
맞지 않아 면담이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한장관이 북한 핵협의라는
바쁜 일정중에도 캔터대표를 만나려고 했던 것은 이런 분위기를 무마키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UR는 1백16개나라가 7년여에 걸친 긴
협상 끝에 타결한 다자간 통상협상이다. 특히 이번 모로코회의에서 세계
각국은 국제무역을 관장할 세계무역기구 (WTO)를 출범시킬 계획이
다. 국제화를 국정운영의 최대지표로 내건 한국이 그 첫 출발선에서 저
지른 가장 국제적이지 못한 행동 이 이번 UR의정서 수정사건이다.
백과사전 한 권쯤 되는 분량의 각국별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우리실무자들은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 에서 4백여개 이상의 농산물
품목에 대한 이행계획을 당초 미국-유럽연합(EU) 등 각국과의 량자협
상 합의와는 달리 우리쪽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수정했다. 이번에 경질
된 김장관을 비롯한 우리정부 고위인사들은 실무진들의 이런 수정사실 자
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게 관가주변의 공공연한 소문이다. 결국 이
사실은 제네바협상장에서야 들통났다. 이런 전후맥락을 볼 때, 이번
파동이 그저 장관 한 사람의 경질로 그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국
제화를 내건 우리정부 전체의 국제화지수 와 그 관리능력-구조 등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두식.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