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에 구걸말자"과감히 외자도입/하이테크 인공섬 15년걸려 완성/
빚 많지만 일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시립회사에 공무원 파견 "경영
실습"/기채부담 고려 각종기금 4조1천억 비축 일본 고베(신호) 시
청 24층에는 시 전체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저곳이
그 유명한 포트 아일랜드 입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국제실의
마루이치씨(38)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섬이 바다 한가운
데 떠있고, 수많은 빌딩이 숲속에 잠겨 있었다. 부두에는 수십만t짜리
는 될 듯한 배들이 정박해 있다. 고베시가 15년동안 만든 하이테크
인공섬 이다. 섬에는 2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3개의 공원과 TV
방송국까지 있다. 해안 도크는 81년 준공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부두이다. 넓이 1백31만평(동서 3㎞ 남북 2㎞)의 이 섬
을 고베사람들은 흔히 포피아 라고 부른다.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일
본인 특유의 조어이다. 고베 사람들로서는 그렇게 불러도 하나도 어색하
지 않을 만한 섬 만들기의 역사 를 간직하고 있다. 공사기간 66
년부터 15년, 사업비 3조5천억여원(5천3백억엔), 시 뒤편 산을
깎아 모두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 쏟아부은 바위와 흙이 8천만㎥ . 주
민 1백50만명의 시 가 이 어마어마한 공사를 추진했으니 계획단계부
터 화제였다. 한국 정부 가 92년부터 추진중인 영종도 신공항 건
설비가 10조7백억원. 26년의 시차, 그에 따른 화폐가치의 하락을
셈해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화제중의 화제는 단연 외국돈을 꾸어다
공사비로 채운 사실이었다. 서독 돈, 스위스 돈, 유러달러 . 한
두푼이 아니라 무려 2천7백억엔, 공사비의 절반이 넘는 액수이다.81
년 봄, 인공섬 창조를 기념해 연 포트피아 무역박람회 에는 1천6백
만명이 모여들었다. 고베가 도대체 어디 있는 도시냐 며 고개를 갸웃
갸웃하던 외국 해운업자들. 그들은 이제 포트 아일랜드를 세계최대의 컨
테이너 부두로 꼽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젖줄처럼
생각하는 중앙정부의 보조금. 그걸 조금이라도 더 타내려면 구걸하다시
피 해야 한다. 시장이 동경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중앙의 정치인-관료들
에게 매달려야 한다. 고베 사람들은 그 젖줄을 과감히 끊었다. 위험
하지만 채권을 발행해 대형 사업을 일으키는 이른바 기채주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모험에 앞서 파산을 두려워 하라"
는 지방자치의 불문율을 고전으로 묻어둔 셈이다. 고베시의 대차대조표
는 다른 지방정부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부채난부터 보자. 92
년 현재 1인당 시의 채무 전국 12대 대도시중 1위(61만5천엔,
4백50만여원), 일반재정에서 채무상환금(공채비)이 차지하는 비율 1
위(17%) . 이제 자산난이다. 1인당 공원면적 1위(14.5㎡),
하수도 보급률 2위(97%) . 한마디로 일본에서 가장 살기좋고 빚
도 많은 곳이 고베인 셈이다."만약 중앙정부 보조금에 의존했다면 30
년이 걸렸어도 하수도 정비를 못해냈을 겁니다." 고베시장에 다섯번
내리 당선, 20년간(69~89) 시살림을 맡았던 미야자키(궁기진웅)
전시장. 하수도 시장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그는 고베를 만든다
는 회고록에서 기채주의가 불가피했음을 그렇게 외쳤다. 기채전략이 맞아
떨어진 데는 인플레이션 덕도 톡톡히 보았다. 갚을 빚이 사실상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고베시의 또하나의 젖줄은 시립회사 와 민
관합작회사 이다. 하수도 개량, 도로건설, 주택공급, 항만건설은 말할
것도 없고 생수회사, 포도주회사, 쇠고기회사, 목장, 주차장관리회사
도 있다. 80개가 넘는다. 다른 도시에는 한두개뿐이다. 파탄이 나면
시와 회사 가 책임을 짊어지는 독립채산제이지만, 아직은 크게 걱정
할 게 없다. 고베시의 중심지에 자리잡은 7층 건물의 고베 백화점.
시와 주민들이 공동출자했다. 처음엔 적자로 허덕였으나, 이제 해마다
1백억엔 이상을 벌어들이는 공기업으로 자라났다.이런 회사들이 가져다
주는 부수입도 짭짤하다. 시 직원들은 이 회사들을 경영실습의 현장
으로 활용한다. 시직원으로 들어온지 8년이 되고 계장시험에 합격하면
기업현장으로 방출된다. 2~3년동안이다. 화장실 청소에서부터 주차장
관리까지 하면서 경영을 배운다. "이 정도면 직원들이 고베시를 우리
회사 라고 스스럼없이 부를만 하지 않나요." 사사야마(세산행준) 시
장의 말엔 자부심이 흠뻑 배어 나온다. 그 고베시가 요즈음 총력을 쏟
는 것은 기금확보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지면 기채엔 부담이 따르니 미
리 돈을 모아두었다가 쓰려는 기금전략이다. 벌써 46개의 기금에 4조
1천2백50여억원(5천5백억엔)을 비축해 두었다.일찌감치 미래를 내다
보고 준비하는 도시경영의 신기법, 신사고가 주식회사 고베시 를 만든
신화의 탯줄이다. 우리의 지자제를 성공시킬 탯줄은 누가 준비하고 있
는 것일까."고베=허용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