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본고사 부활로 독서 분위기 확산/명문대 수석합격생 대부분 독서
광/출판계 "엄청난 독자층 출현" 흥분 낙후성탈피 기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왜 쓸데없이 책만 보느냐." 우리나라 독서문화의 저열
성과 낙후성은 이 한마디에 놀랄만큼 정확하게 농축돼 있다. 주로 중-
고등학생, 보다 열성적인 어머니를 둔 경우,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듣곤 하던 이 질책은 독서는 공부와는 다른 것, 다를 뿐
만 아니라, 방해가 되는 짓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
구니 없는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버지가 쓴 작품을 읽다가
어머니한테 혼 난다는 전설이 출판계에 전해내려올 정도였다.이래서 출
판계에서는 중-고등학생층을 아예 없는 것으로 쳤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참고서였다. 무조건 외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참고서는 문화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었다.이같은 반문화-반지성적 상황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신설과 본고사부활 등 대학입시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뀐
올해부터이다. 이런 현상은 올해시험결과가 발표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올해 서울대와 포항공대 등 명문대수석합격자들이 책을 읽
으면서 시험준비를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은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
휘했다. 주관식시험 만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포항공대 수석합격자 이
승준군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 ,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
등 사회과학서를 비롯, 철학-문학 등 다양한 독서를 했고, 서울대 전
체수석 최지환군은 삼국지 를 무려 15번이나 읽었다고 말했다.이 정
도면 독서도 훌륭한 수험준비가 된다 는 데 이의를 달기 힘들게 됐다
. 입시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구적 학부모 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지역
에서는 국민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는 분위기가 급속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
다. 전기발표후 가속화 달라진 조짐은 서점가에서 벌써 가시화되고
있다. 방학만 되면, 밀린 영어-수학공부를 보충하느라 바빴던 중-고등
학생들의 발걸음이 일반교양도서쪽으로 눈에 띄게 몰리고 있는 것이다.
교보문고 김성룡영업부장은 "지난해부터 중-고등학생들이 문학이나 인문
사회계통의 책을 사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면서 "이 속도대로 가면 곧 교양도서시
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보았다.물론 교양도서를 사는 학생
이 1백%수험목적으로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
다. 문제는 비율. 즉 지금까지 공부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치고,
교양도서를 사던 것에서 이제는 적어도 시험준비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고 안도하면서 책을 사는 분위기가 생긴 것. 말하자면 90%는 머리를
식힐 목적으로, 나머지 10%는 본고사 논술고사준비로 이문열의 사
람의 아들 을 사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연세
대-고려대정도를 바라보는 학생이라면 독서가 입시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
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교보문고측은 이와 관련, 지난해 하반기
부터 교양도서중에서 입시를 염두에 두고 학생들이 사간 것으로 판단되는
책목록을 작성했다. 매장에서 고객에게 책을 직접 파는 현장직원들의
판단에 토대를 둔 것으로,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목록은
펄벅의 대지 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등 고전부터 이영섭의
과학원 아이들 이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근간까지 두루
포함돼 있다. 목록작성작업은 서점의 판단은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학생이 시험을 염두에 두고 사가는 경우 를 대상으로 엄격하게 진행했다
고 서점측은 밝혔다.따라서 특별한 기준이 없고 목록의 내용도 매우 엉
성하다. 그러나 입시를 위해 학생들이 읽은 최초의 도서목록이라는 점
에서 의미가 대단하다는 것이 교보문고측의 자랑이다. 입시위한 목록도
출판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학생독자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른바 교양도서 출판사들은 이 새로운 독자시장의 출현에
흥분하면서 접근법을 신중히 찾아나가고 있는 상태. 시장의 규모는 출
판업계의 장르중 가장 거대하다.앞선 기획으로 유명한 김영사는 서울대
등 올해 본고사를 치른 학교들의 시험문제에 대한 정밀검토작업에 착수했
다. 시험문제와 교양독서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는 상태.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만만치 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출판사측은 밝혔다.만약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명
되면, 우리나라의 힘겨운 독서운동은 그날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입시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시도됐던 수
많은 캠페인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초강력독서운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하며 시험준비. 이같은 상황이 몇년간만 지속되면 국민적 독서역량
은 금세 세계 최고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겠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
지 않다. 최구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