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기군의 인간승리 20년/공부하며 필기연습 논술벽 넘어/"불편
한몸 덕에 인내심 길렀어요"/기억력도 부족 남보다 문제집 3~4배
더 풀어 "나 나무 나무의자에 모 몸을 몸을 바 밧줄로 꽉 묶어놓은
사 상태 ." 22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임산공학과 합격 소식을
들은 정훈기군(20.화곡고졸)은 지난 세월 자신의 모습을 의자에 결박
당한 사람으로 비유했다. 한 단어를 말하기 위해 열번씩 안간힘을 써야
하는 입, 처진 어깨와 제대로 가눌수 없는 목, 걸을 때마다 자꾸
안으로 구부려지는 오른쪽 다리 . 뇌성마비 장애자로 서울대 사상 첫
입학생이 된 영광의 뒤안에는 처절한 스스로와의 싸움, 좌절할 때마다
일으켜 세워준 담임선생님이 있었다. 이번 서울대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군을 가장 괴롭힌 것은 힘이 없는 손가락이었다. 중고시절 수업시간에
는 중요 단어만 표시하든지 동그라미와 화살표를 이용해 약어로 필기를
대신할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 국어 논술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비록
글씨는 비뚤어지더라도 끝까지 쓸 수 있도록 오른손 검지의 힘을 살려
야 했다. 우선 중지와 약지사이에 조각도를 끼듯 펜을 쥐고 시간 날
때마다 종이를 찾아 생각나는 단어를 써댔다. 물리공부를 할때도 쓰기
연습을 중단하지 않았다. 정군은 "그 덕분인지 논술 80분동안 정신없
이 써내려가다보니 시간이 5분이나 남았더라"고 말했다.정군의 뇌성
마비는 선천성이었다. 어릴때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분명히 같이
뛰기 시작했는데도 혼자만 뒤에 처지는 것이 이상했다. 친구들이 아무
생각없는 아이 라는 긴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기억력 역시 형편없었다
. 정군은 "머리가 나빠서 남들보다 문제집을 3~4배 더 많이 풀었다
"고 했다. 그는 14평 전세아파트에서 어렵게 4식구를 부양하는 아
버지(45)를 보며 "내 몸 때문에 집안의 돈을 많이 썼으니 서울대에
가야한다"고 고집했다. 신체관련 응시제한이 많았던 작년 첫 응시때는
신체검사와 상관없는 과를 골라 농학과를 지망했다. 그러나 좁기 짝이
없는 강의실용 책상에서 시험을 치르는동안 시험지와 펜이 자꾸만 바닥으
로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주워올리면서 정군은 눈물을 흘렸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정군은 1주일동안 앞으로 무얼할까 를 괴로워
하며 방을 나오지 않았다. "몸도 정상이 아니니 어딜 쏘다니며 맘대로
방황할 수도 없었어요." 사무실 사환으로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재도
전해볼까 망설이던 정군은 존경해오던 3학년 담임 현길섭선생의 "포기하
면 안된다"는 말에 마음을 바꾸었다. "선생님도 한쪽발을 약간 절었어
요. 늘 꿋꿋하게 밤늦도록 저희들을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래야지 하는 다짐을 수없이 했습니다." 우리의 자랑이
돼달라 는 뇌성마비협회의 간곡한 호소도 뿌리칠 수 없었다.1년간의 재
수끝에 재도전하면서 정군은 서울대측에 큰책상을 쓰게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작년처럼 당황하지않고 시험을 치러냈다. 그리고 새 날이 밝
았다. 정군은 "뇌성마비는 나에게 인내와 뚝심을 길러줬다"면서 "이
젠 남들이 뛰어가면 차를 잡아타고 따라가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손정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