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속 일과시작 새풍속 정착/ 대낮퇴근 후 자기생활 몰두/가족동
반 나들이 기회도 넉넉/협력사-대학서도 도입 움직임 아침 햇살이 펼
쳐지기 한시간 전인 29일 오전 6시30분.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본관 4개의 회전출입문이 쉴새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뜨면 지
각 인 삼성맨 들의 어둠속 하루가 열리는 시각이었다. "해뜨면 지
각" 긴장 엘리베이터가 24층에 서자 튕겨지듯 빠져나온 삼성물산 국
제금융담당 강형규과장(32)은 로이터 등 국제통신망과 연결된 컴퓨터부
터 켰다. 오전7시8분 "실력만이 당신을 실세로 "라는 그룹TV방송을
뒤로 하며, 강과장은 막(오전 7시) 폐장된 뉴욕증시에 대한 추가정
보수집에 나섰다. 아직도 창밖은 어둡다. 18만 삼성맨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보다 1~2시간 빠른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5
시 정도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룹이 양보다 질, 세계화,
국제화 라는 신경영이념을 수립, 지난 7월12일부터 전격 실시한 조기
출퇴근제(오전7시 출근, 오후4시 퇴근)이후 삼성맨들의 일상이다.
출근시간의 변화는 업무양태에도 엄청난 변화를 함께 몰아왔다. 출근후
커피를 마시며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신문을 뒤적이는 한유한 모습은 아예
사라졌다. 업무처리도 가히 전투적 이다. 강과장은 "정신없이 일하
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을 맞는다"고 했다. 삼성맨들간에 7.4 조치
(오전7시~오후4시의 준말) 로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한마디로 시
간의 효용가치를 최대한 살리자는 것.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보다
많아진 시간을 자기계발, 인간관계, 휴식 등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
21세기를 불과 6년 남긴 마당에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는 성실
의 미덕만으로는 2천년대 생존경쟁에서 이길수 없습니다." 삼성물산 인
사담당 안준호부장(40)의 말이다. 정시퇴근안하면 "무능" 이제
오후4시 퇴근후에도 일을 하면 성실하다는 칭찬 대신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후 4시가 되면 삼성맨들은 어김없이 출입문을 나서서 집,
학원, 헬스센터, 골프장, 영화관, 취미서클 등으로 각자 흩어진다.
삼성본관 주변에는 퇴근하는 남편과 오후데이트 를 즐기려는 신세대
아내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현재 수영 야구 등 사내 취미동호
회는 삼성물산에만 26개, 1천5백명 직원의 55%인 8백26명이 가
입했다. 자기계발을 위한 학원비등은 전액 회사로부터 지원받는다. 영어
-일어에 능통한 전자개발팀 이창원씨(27)의 경우 오후 5시엔 회사근
처 중국어학원에 다닌다. 6명 수강생중 반이 삼성맨. 삼성 특수를 겨
냥, 종로-광화문 일대 외국어학원은 오후 5시 강좌를 부랴부랴 신설했
다. "새롭고 과감한 착상" 결혼 2년째인 삼성물산 김유수씨(27
)의 아내 박혜준씨(25)는 조기출퇴근제 이후 매주 두번씩 남편과 데
이트를 즐긴다. "이젠 일에 지쳐 귀가후나 일요일에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 김씨는 외국과의 거래를 의식, 골프도 배우고 있다
. 조기출퇴근제 도입의 성공여부를 판단하긴 아직 이르지만, 새롭고도
과감한 착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의 이 제도는 삼성협력업
체뿐 아니라 일반 업체에까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의 강의시
작 시간에까지 파장이 미칠 조짐이다. 국제화 세계화 란 단어가
풍미했던 93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 은 비단 어린이들만의
덕목이 아님을 실감케한 삼성의 신선한 발상전환 이었다. 김치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