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고설봉씨 간직 전4막/41년 첫공연 인내천-민중주체사상
담아 동학혁명1백주년을 앞두고 식민지시대의 극작가 임선규(본명 임
승복)가 동학혁명의 이념과 전개과정을 그린 희곡 동학당 의 육필원고
가 최근 발굴돼 40여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 동학당 은 극단
아랑 이 1941년 첫 공연을 가졌으나 곧 일제의 압력을 받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가 광복 이후 한 차례 재공연된 뒤 그동안 흔적도 없이
실종됐던 연극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의 신극을 써서 한
시대를 풍미했고, 배우 문예봉의 남편이었던 작가 임선규가 월북한 지
얼마 안돼 사망하면서 연극 동학당 도 증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월북작가로 낙인찍혔고, 심지어 북한연극사에서도 전혀 언급되
지 않고 있으므로 동학당 의 희곡도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
나 최근 근대희곡연구자 이재명씨(연세대강사)가 원로배우 고설봉씨가 간
직해온 희곡원고를 찾아냈다. 특히 이 원고는 작가 임선규의 친필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연구자 이재명씨 발굴 전4막으
로 구성된 희곡 동학당 은 동학혁명의 발생에서 패배까지를 토태로 양
반과 상민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그리고 있다. 제1막에서 양반사회의
부패상을 제시하면서 민중들의 분노를 묘사, 동학혁명의 필연성을 제시
하고, 2막에서는 동학도의 집회장면과 인내천 사상이 강조된다. 3
막에서는 동학혁명군의 승리가 그려지지만, 4막에서는 동학혁명이 일본군
에 의해 좌절된 뒤 새 세상이 와야 한다 라는 주인공의 외침과 함께
막을 내린다.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
지 않고, 작품무대도 전라도가 아닌 충청도를 택했다. 그러나 등장인물
의 입을 빌려 전봉준을 위엄 있고 패기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동학의
주체를 민중으로 보는 시각을 과감하게 밝힌다. 그 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봉준이라는 영웅이 전라도 일원을 뒤집어 엎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됐던 민심이 전봉준이를 통해서 터져나왔고, 전
봉준인 그저 모든 백성중에서 용감한 사람의 한 사람일 뿐이지요."
또한 동학당 은 판소리 춘향가 를 극중에 활용, 판소리의 민중성을
신극에 활용하는 기법을 구사했다. 류민영교수(단국대)의 연구서에
따르면, 동학당 은 극단 아랑 이 황금좌에서 공연, 1주일만에
4만7천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어느 날은 오후1시부터 네번 공연해서
하루에 1만7백명을 동원한 적도 있다. 관객 하루 만명 동원도
동학당 을 발굴한 이재명씨는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희곡중에서 동학을
제재로 한 것은 김우진의 산돼지 (1926) 이후로, 조용만의 가
보세 (1931)와 채만식의 제향날 (1937) 등을 꼽을 수 있다
"면서, "그 중에서도 동학을 전면적으로 다룬 본격적인 희곡작품으로는
임선규의 동학당 을 먼저 꼽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고설
봉선생이 그동안 이 희곡을 공개하지 못한 것은 월북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 육필원고의 판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면서 "
게다가 임선규를 비롯, 송영-함세덕 등의 월북작가들이 모두 신파극작가
로 매도당한 편견때문에 동학당 도 잊혀져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희
곡 동학당 의 전문과 작품에 대한 평론은 이달말쯤 출간될 월간 현
대문학 12월호에 게재된다. 박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