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반공단체 있는 타워호텔 투숙 거부"/"회담장 만국기 철거하라"
엉뚱한 요구/북,회담연설서 주체사상 찬양 일관/대표단 행렬 구경인파
에 놀라자 "오해말라" 일침/일부 정치인 북인사 사진촬영 바빠 19
72년 9월12일 오전10시. 북측 대표단 일행 54명이 드디어 자
유의 집 에 도착했다. 분단 27년만에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한 땅
을 밟은 것이다. 잠시 환담을 나누던 북적 김태희단장이 난데없이 생트
집을 잡았다. 숙소인 타워호텔에는 반공단체가 들어 있으므로 거리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곳에는 가지 않겠다며 나더러 확인성명을 내달
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으나 김의 태도가 요지부동이라 하는 수 없이
김연주 교체수석대표가 판문점 출발 직전 확인 성명을 발표했다. 차
량행렬이 지나는 길은 시민들로 엄청난 혼잡을 이뤘다. 김의 입이 벌어
졌다. 시민들이 북에서 오는 공산주의자들 을 환영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김의 모습이 너무 뻔뻔스러워 보였다. 우리가 평양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대접했는가? 나는 그순간 김에게 이런 말을 했다
. "환영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12시15분 타워호텔 도착. 저
녁 6시30분엔 김용우 대한적십자 총재가 베푸는 환영연이 있었다. 장
소는 경회루. 각계각층에서 1천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이날 내
가 가장 실망한 것은 일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연신
북측 인사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김태희나 윤
기복과 사진을 찍는 것이 다음 선거때 얼마나 표를 모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으나, 우리 정계 인사들이 그들에게 아첨하는 것처럼 보여 한
심했다. 이날 밤 우리측 정주년대변인과 북측 한시혁대표, 그리고 쌍
방 수행원 3명씩이 실무회의를 열어 합의서 초안 내용을 검토했다. 우
리측은 판문점에 대표 2명과 필요한 수행원으로 실무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적십자공동사무국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네차례 실무회의 무산 북
측은 적십자회담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할 셈인지 남북 당국, 각계각층
애국인사의 협조를 호소하자는 내용을 넣자고 주장했다. 무려 네차례 실
무회의에서도 합의를 보지못했다. 날이 새자 김태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무슨 꿍꿍이인지 조선호텔 회의장에서 협정을 하자고 했
다. 이런 김의 대답은 서울의 첫 회담을 한 두시간 남겨 놓은 상황에
서 대단히 무책임하고 무례한 행위였다. 우리측은 회의시작 15분전인
9시45분에 조선호텔에 도착했다. 10분뒤 도착한 북측 일행은 합의
서 문제는 꺼내지도 않고 또 시비를 걸었다. 호텔앞에 게양돼 있는 만
국기를 철거하라는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와 소련등 공산
국 국기는 없고 인민의 적인 미국과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기만
걸려 있다"는 것. 만국기를 제거하고 합의서 문제를 다시 협의하
기 시작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개회 시간인 10시 정각을 넘어 1
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자들이 차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 이 회담을 앞두고 미국으로 떠난 김용식외무장관이 신신당부한 것이
있다. 북측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회의를 깨서는 안된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유엔에서 한국이 남북회담을 깼다고 책임을 뒤집어 씌워
유엔에서 우리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염려였다. 예정시각에서 15분이
넘었다. "김단장, 최종적으로 한마디 하겠소. 우리들은 실무소위원회
와 공동사무국 설치문제를 일단 보류하고, 당신들은 모든 세력 운운하는
조항을 양보하는 것이 어떻소?" 김은 동의를 구하듯 자기네 자문위원
인 한시혁을 쳐다 보았다. 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일조차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게 무슨 대표단장이란 말인가?" 나는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회의장에 들어갑시다." 홧김에 김의 팔을 끌어
당기며 앞장을 섰다. 나의 개회연설이후 예정된 순서대로 연설이 진
행됐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북측의 윤기복과 김병식의 연설은 이랬다.
"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지도하는 바에 의하여 주
체사상과 공산주의로 무장하여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집 문제, 아이
들 공부시키는 문제등을 해결하고 누구나 잘 사는 자주독립 국가를 이뤘
다 ." 이 연설은 생방송되었다. 북 뒤늦게 합의서 제의 전국의
안방에서 윤의 연설을 듣는 순간 주먹을 불끈쥐고 일어서 중계방송을 때
려치우라고 아우성을 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이랴! 신문 방송마다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112신고전화에 다이얼을 돌린 사람도 60여명이나
되었다. 나는 회의를 끝내면서 김에게 물었다. "이제 제2차 본회
담을 마치려고 하는데 김단장, 다음 본회담은 언제 열 것인지 합의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 "네 그건 저 좋은 의견입니다. 서로 의
논해서 ." 김이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렸다. 독촉했다. "우리가 머뭇
거리고 주저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건 저 쌍방의 연락사무소도 있
고 하니 ." 김의 목소리는 겨우 나한테만 들릴 정도였다. 결국 합의
문 발표도, 다음 회의에 대한 일정도 발표하지 못한 채 폐회를 선언했
다. 량탁식서울시장이 베푸는 오찬이 도쿄호텔에서 끝난후 시내관광과
중앙박물관을 관람하기위해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찬에서 위대한 김일성 을 찾던 김이 그와는 정반대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엉뚱한(?) 귀엣말을 했다. "이수석대표는 평안도 내기라
서 그런지 욱!하는 데가 있습니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을 당하니
그렇지요. 그런데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사실 우리가 오전 회담에
앞서 조금만 더 이야기 했으면 합의를 볼 수 있었는데, 이수석이 욱
!하고 회의장으로 잡아 끄는 바람에 ." "난 그런 참을성 없습니다.
"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합의를 보도록 합시다." 만찬후 간단한
회의 절차를 밟아 합의서를 발표하자고 말했다. 이날 저녁 워커힐 호
텔에서 열린 2시간동안의 만찬에서 있었던 일이다. 반라(반라)의 모던
댄싱 걸들이 나와서 캉캉류의 요란스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김은 반
누드 걸들의 춤에 흥미와 당황한 빛을 교차하는 이방인과 같은 얼굴이었
다. "부패다. 이런 것은 내 취미와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춤
을 끝까지 다 보았다. 이날 밤 열기로 한 회의는 뜻밖의 사정 때문
에 열리지 못했다. 상부에서 "무슨 회의를 밤중에 하려는 거냐? 내일
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난감했다. 김에게 평양 중계방송을 갑자
기 준비하기는 어렵다고 꾸며 겨우 고비를 넘겼다(2차회담에 관한 이씨
의 원고는 여기서 끝이 나 있다). 정리=박순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