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개론 교과서의 독재정치 편에는 독재정권의 특징들 가운데 하
나로 기념물 건축사업이 지적되어 있다. 정권의 위엄과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기념물을 많이 지어 국민들의 눈을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도 기념물을 많이 짓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나라로, 곳곳에서 수많은 기념물들을 만나게 된다.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비롯한 무수한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들이 즐
비하며 기념관들이 산재해 있다. 꼭 기념관이 아니라고 해도 건물은 물
론 거리와 심지어는 골목의 이름조차 지난날의 명사의 이름을 따라 불러
주는 경우가 흔하다. 그 대부분은, 당연히도 인류에게 빛을 남긴 불멸
의 위인들에게 바쳐졌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서 작게나마 공헌한 사
람들을 추모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생각해서는 납
득이 가지 않을법한 사람들의 기념물도 없지 않으니, 그 한 보기가 로
버트 리 장군의 기념관이다. 남북전쟁 때 연방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남부군의 총사령관 자리를 맡았던 리 장군의 집을 뒷날 국회는 기념관으
로 지정해 준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꼽
히는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숀은 놀랍게도 영국의 한 사생아가 기부한 거금
의 산물이다. 생부로부터 친자확인을 거부당해 평생 괴로워했던 제임스
스미소니언은 나의 이름이 새 땅에서 영예롭게 영생불멸하기를 바란다
는 한많은 유언과 함께 엄청나게 큰 돈을 그때 막 독립한 미국에 맡
겼는데, 미국정부와 국회는 옛 식민지 본국의 더러운 돈 이라고 뿌리
치지 않고 받아 수도 한복판에 수려하고 위풍있는 성채를 지어 인류문화
유산의 훌륭한 보관소로 쓰고 있는 것이다. 기념물을 잘 짓는 미국
사람들의 습성은 자료를 잘 보관하는 습성으로 이어진다. 미국만큼 알카
이브, 곧 문서보관소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공립기관이든 사립기관이든
자체의 문서보관소를 반드시 갖춰 수십년 수백년 전의 문서를 제대로
보관하려고 노력한다. 연방정부의 문서보관소에 해방 당시의 남북한 문
서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얘기는 이미 꽤 알려진 사실이다. 남북한에도
없는 해방 직후 시기의 남북한의 국민학교 교과서, 심지어는 어느 학
생의 공책도 거기에는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10년에 정치학
박사를 받은 곳인 프린스턴대 도서관을 가보자. 거기에는 이 군이 극
도로 빈곤하니 학위증 비용을 면제해 주는 것이 좋겠다 는 지도교수의
아주 작은 메모지까지 80년이 넘도록 남아있다. 앞서 간 사람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기념하고 또 그 사람들과 그 시대의 자료들을 제대로
보관하는 생활자세에서 미국사람들은 역사의 소중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깨
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침 저녁
으로 역사를 만나고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다. 단국대 교수.미우드로 윌
슨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