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새 문민정부의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
는 장면은 여간 흐뭇하지가 않았다. 그 때 대통령과 장관들 사이의 거
리는 한발자국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웃음도 있었다.
그후 임명장을 받는 고위공직자와 대통령과의 거리는 점차 대통령 자리
와 공직의 거리 만큼 벌어졌다. 엊그제 새 경찰청장은 꽤나 멀리 떨어
져 있었다. 대통령이 서는 위치가 달라진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서는
자리가 뒤로 물러난 것 같다. 요새 임명장을 받는 사람들은 또 웃지
도 않는다. 그만큼 대통령이 어려워진 탓이라고 봐야 할까. 대통령은
당연히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는 형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영도자란 무서
운 존재가 되는게 좋다고 마키아벨리가 말한 적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권위란 덕망과 능력, 그리고 신뢰의 산물이
다. 엊그제 있은 김대통령의 첫국정연설때 한번도 박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연설내용이 너무 훌륭해 박수할데가 너무 많아서"라고 말한
여당간부가 있었다. "연설이 너무 엄숙하고 장중해서" 라는 말도 나왔
다. "대통령 국정연설에는 원래 박수하지 않는 법"이라는 억지도 나왔
다. 모두가 대통령의 위치와 국회의 위치를 비교하게 만든다. 연설할
때 50단어에 한 번씩 1인칭을 쓴 독일의 권력자가 있었다. 또 어
떤 정치인은 80단어에 한 번씩,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근 3백단어에
한 번씩 썼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대통령은 이번에 저 라는 1인
칭을 23번 썼다. 자기 에 관한 언급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