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 멀면 먼 것인가. 지칠 때까지 걷는 거리이면 멀지. 이
세상 끝까지 라면 멀지.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샛별
까지라면 멀지. 얼마만큼 깊어야 깊다고 말할 수 있고, 얼마만큼 높아
야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9월 2일 밤 안네 소피 무터의 연주회가
열린 예술의 전당에서 나는 이런 동화 생각을 했다. 브람스 소나타
1번, 모차르트 소나타 e단조,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2번등을 연주한
무터의 바이올린 독주를 듣고, 얼마만큼 훌륭하면 훌륭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무터만큼 훌륭하면 훌륭한 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만큼 무터는 훌륭했다. 그는 음악적 독립국가임이 분명했다.
우선 톤이 맑고 기름지고 한없이 부드러웠다. 악절 구사를 위한 호
흡법이 적절했고 활 사용이 능란했을 뿐아니라 음악적 구획의 정리 방식
이 독특했다. 음악의 전체 모양새 잡는 솜씨가 뛰어났을 뿐아니라, 겉
으로 드러나는 화음과 속에 숨어있는 화음의 대비가 좋았고, 리듬 감각
이 탁월했기 때문에 악곡이 구성되어 가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시계는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나 인간 마음은 그 속에서 천태만상을
띠며 겉잡을 수 없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모습을 진지하게
경험하도록 한 첫 곡의 연주는 우리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같고, 브
람스의 연주에서는 노골적으로 음악적 독립 국가의 황제로 자처하고 나섰
다. 그만큼 당당한 연주를 해내고 있었다. 가늘게 혹은 굵게, 길게
혹은 슬프게 울수 있는 톤으로부터 무터는 개성미 짙은 모차르트 음악을
멋있게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음악회가 빨리 끝나면 안된다. 더
들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순간 이미 마지막을 장식할
프로코피에프 소나타는 시작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늘의 뜻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 엄숙한 음악적 순간의 의미를 실감케 한,
연주예술 의 절정을 경험하게 한 프로코피에프의 연주였다. 경제가 예
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경제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밤이었다. 음악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