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성지엔지니어링 문종근사장은 종업원 3명과 똑같
은 작업복을 입고 숙식을 함께 하며 기계 4대를 하루 10시간씩 돌린
다. 지난해 5월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퇴직금으로 회사를 세운지
1년여동안 계속 해온 일과다. 그 덕분에 일본에서 수입하던 QDC(신
속하게 금형을 바꿔주는 자동화부품) 시스템도 손수 개발해냈다.그런 땀
과 보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금난은 세끼식사처럼 다가왔다. 다만
사채시장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담보가 없기
때문이다.그는 제품을 주로 중기업에 납품해왔다. 중기업들은 다시 대
기업에 납품을 해서 결제기일이 60~90일짜리인 어음을 받았다. 중기
업들은 이 어음을 자기들이 쓰는 대신, 1백20~1백50일짜리 어음으
로 문사장에게 납품대를 치르는 과정을 밟아왔다.그와 거래하는 회사들은
상장업체가 아니어서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해주지 않는다. 사채시장에
서 4~5%로 할인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전체대금의 15~2
0%가 앉은채로 깎이는 셈이다. 그나마 제 때 주면 고맙겠지만 어떤
회사는 납품한 지 7개월이 지난 뒤 전체대금중 30%를 1백40일짜리
어음으로 주기도 했다.문사장은 요즈음 어깨가 더욱 처졌다. 밥줄을
걸다시피 해온 사채시장이 하루아침에 동결된 것. "사채시장이 왜 생
겨났는가. 중소기업 어음은 은행에서 할인을 해주지않기 때문이 아닌가.
비싼 이자를 치르더라도 담보없이 할인을 해주는 효능이 있기에 사채가
생겨난 것 아닌가." 이런 생각과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와
중에 반가운 정부 발표를 들었다. 영세기업에게 담보없이 대출하도록 하
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발표를 순진하게 받아들여 우선 중소기업은행 문
래동 지점을 찾아갔다. 그러나 각종 세금완납 사실을 증빙해서 어음할인
을 부탁했으나, "담보가 없으면 안된다"는 차가운 대답만 듣고 돌아나
왔다. 다시 회사설립때부터 거래해온 상업은행에 가서 똑같은 하소연을
했으나 역시 똑같이 거절만 당했다.허탈해져서 공장에 돌아오니 재무부
고관의 좌담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에 가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는 기업인의 고정관념부터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그는 실명제를 1백%
지지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를 알
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취지 이전에, 은행이 각종 세금완
납 증명이나 매출액, 거래회사내역, 재무제표들을 조사 검토해서 담보없
이 신용으로 어음할인과 대출을 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다는 쪽으로 실명
제를 보는 눈이 확 바뀌었다. 최홍섭.경제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