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옛 서울 지안(집안)은 지명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 교과서
에서 배운 이름과 발음은 비슷했으나 집안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곳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과 우리의 60년대 경기도나 충청도 어디쯤을 연
상시키는 신작로, 그리고 그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들 . 바
로 앞에는 압록강이 흘렀다. 그 건너 강가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
하는 아낙네나 엄마따라와 옆에서 물장구치는 어린애들 모습도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었다.낯익은 산하에 대한 반가움은 이곳을 무대로 펼쳐진
우리 선조, 고구려인들의 역사와 문화 현장을 둘러보았을 때 더했다.
고구려 고분의 육중한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자 가벼운 탄식이 절로 나
왔다. 눈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화려한 벽화. 심한 습기로 물방울들이
생기고, 군데군데 떨어져나가 회를 바른 흔적이 있어 아쉽다는 감정하
고는 달랐다. 오랜 세월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벽화들이 형태와 색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고 반가웠다.칠흑같은 어둠속, 한줄
기 희미한 손전등에 모습을 드러낸 벽화는 1천5백년 전 고구려의 두번
째 도읍 국내성에 살았던 고구려인들의 생각과 행적을 감동적으로 전하
고 있었다.사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 집안의 고구려 벽화들은 어쩌
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숱한 위기들을 넘겼다. 순금
과 보석 등이 부장된 왕릉-귀족 무덤들은 이미 고대부터 도굴꾼들의 집
중적인 범행대상이었다. 인근 통화의 예술문화단체서 근무한다는 한 조선
족 청년은 오회분이 6.25 때 북한 지원 중공군의 임시 지휘본부로
쓰였으며 그때 무전병으로 일한 사람이 지금 통화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 그는 장천 1호분은 10년전만 해도 거지들이 우글거린 잠자리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벽화가 남아 있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인지도
모른다.반가움 다음에 오는 것은 우리가 왜 이제야 고구려를 찾게 됐을
까 하는 반성과 회한이었다. 우리는 남북분단, 중국과의 이념장벽을 핑
계로 너무 오랫동안 대륙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고구려의
그 광대한 영토를 기억하고 그 기상을 잊지 않았다면 일제가 은연중에
뿌려놓은 약소국 운운 의 패배의식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을 .집안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보존문제는 아직도 한-중간에 미묘한 사안이다. 하
지만 우리 정부가 신중하게 대응한다면 어려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대륙을 웅비하던 고구려인의 꿈과 기상을 벽화로만 남겨둘 것인가. 그
광활하고 낯익은 땅은 이제 훌륭한 기술을 가진 후손들의 개발을 기다리
며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안=김태익문화1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