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22년의 삶 그리며 /"평생을 아기같이 산 사람 이젠 하늘
나라서 행복" 지상에 소풍 나온 천사를 하늘로 돌려보낸지 넉달.지난
4월28일 작고한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22년간 시인과
함께 한 삶을 날개없는 새 짝이 되어 (청산 간)라는 한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안돼요. 지금 우리가 그림사게 생겼어요? 안돼
요 안된다! 안된다! 니가 그 그림 안갖다 놓으면 내가 죽을 때까
지 니를 원망할끼다 남편은 마구 화를 내며 몇백만원 짜리 그림을 당
장 1만5천원 계약금으로 사고 나머지는 죽을 때까지 갚겠다고 한 것이
다."(본문에서) 1년작업 영전에 바쳐 평생을 아기같은 무구함 속
에 살다간 천시인. 산동네를 그린 한 화가의 그림을 본 그는 그자리에
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그림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푼이 어려운, 부인 목순옥씨가 꾸려가는
서울 인사동의 찻집 귀천 의 수입으로 살아가던 천씨가 그렇게 좋아했
던 산동네 그림은 평소 귀천 단골이던 화가가 선물, 지금도 귀천에 걸
려있다. "그분이 그렇게 가실 줄 모르고 1년전부터 매일 밤 열두시
부터 새벽 두시까지 두시간 씩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해 글을 썼어요.
그때마다 뭐라고 쓰나? 뭐라고 쓰나? 묻기에 천 선생 욕쓰고 있
어요. 나오면 보세요 했었는데 ." 대학 노트 세권에 가득 써내려간
이 글은 결국 시인의 영전에 바치게 됐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 노래했던 천시인. 목씨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55년, 당시
문화인들의 아지트 이던 명동 갈채다방. 경북 상주여고 2학년 학생이
던 목씨는 오빠가 여러 문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서울 상대를 갓 졸업
하고 시를 쓰고있던 천시인을 처음 보았다. 정작 부부의 연으로 만난
것은 17년 후인 1972년. 70년 소위 동백림 사건 연루 혐의
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갖은 고문에 폐인이 다됐던 그는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 43세 신랑-36세 신부 우리 문학사에 둘도 없는, 살
아있는 사람의 유고 시집이 나오는 소동이 벌어지는동안 시인은 응암동
서울시립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입원한 그를 위문다니며 목
씨는 자연스럽게 그의 반려자가 되기로 생각한다. 작가 김동리 선생의
주례로 마흔 세살의 신랑과 서른여섯살의 신부가 탄생했다. 전기 고문
을 두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을 텐데, 세번의 전기 고문이
자기를 망가뜨렸다고 늘 말했죠. 사람이나 일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
한 길만 택해서 살았던 그분이나, 그런 사람과 사는 나를 우습고 엉뚱
한 부부로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기
를 좋아하고 평생 자기 집 갖기를 열망했던 그 분이 이제는 하늘 나라
에서 행복하실 거예요." 박선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