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9일이라면 모든 한국인이 해방의 기쁨에 도취돼 있을
때였다. 이 때 일본 청삼의 한 작은 항구에서 일본 해군소속 수송선
부도환 이 출항했다. 그 배에는 징용당한 한국인 5백50여명이 타
고 있었다. 그들은 아오모리 지방 철도건설에 끌려와 시달릴대로 시달
린 끝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서 해방의 기쁨을 맞는 것만도 행복이
라 여겼다. 그들보다 불행한 많은 동료들은 터널공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 배는 동해를 남하하여 무학항에 입항했다. 그러나 8월2
4일 까닭모르는 폭발사고가 일어나 한국인이 모두 숨졌다. 왜? 아무
도 캐내려 하지않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자는 경도의 일본인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은 최근 이 사고를 주제로 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제작비의 모금을 위해 희생된 한국인 징용자들의 고생스런 발
자취를 더듬는 단체 투어를 모집하고 있다. 패전 50년을 맞는 199
5년에 그 영화를 전국에서 상영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2차대전중 일
본군에 의해 말레이시아로 끌려가거나 차출됐다가 전쟁범죄자로 몰린 한국
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기막힌 사연을 추적한 것은 일본 여성이었
다. 그러고 보면 정신대며 위안부에 관한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려한 것
도 일본인이었다. 민비얘기도 그렇고 한국의 마지막 왕비얘기를 쓴것도
일본인이다. 한국인 역사학자나 작가들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도 역사
에 무관심하다. 남의 과거를 들춰내는건 좋아하면서 자신의 기록을 남기
는데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2년후면 해방 50년을 맞지만 일제 3
6년 에 대한 인식이 일본인만도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