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자서전 이후 12년간 14권 "장정" 니코스 카잔차키스
대표작 선집이 완간됐다. 81년 영혼의 자서전 번역이후 제13,
14권인 인간 카잔차키스 에 이르기까지 장장 13년동안의 대장정이
결실을 맺었다. 단행본출판사로서는 최대규모이지만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친다는 비판을 받곤 하는 고려원의 문화적 자존심 을 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선집이기도 하다. 지식인층, 특히 두뇌는 빛나되 용기
가 부족함을 스스로 탄식하는 창백한 지식인들에게 용기의 위대함과 영혼
의 자유를 일깨워 줌으로써 수많은 골수 추종자 를 확보한 작가인 카
잔차키스. 그러나 그는 57년 세상을 뜬지 10년여동안이나 우리에게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카잔차키스 문학 의 도입자는 남재희씨였다. 68
년 언론인 해외연수프로그램인 니만펠로우로 하버드대에 유학중이던 남씨(
당시 조선일보 편집부국장)는 미국에서 상영되던 영화 희랍인 조르바
(주인공 조르바역의 앤터니 퀸의 열연으로 유명하다)를 보고는 감격했다
. 그 감격을 귀국한 뒤까지 잊지 못한 남씨는 논설위원실에 있던 이어
녕씨(전 문화부장관)에게 일러 주었다. 밖에서는 문학사상사를 경영하
던 이씨는 즉시 책을 입수해 박석기씨(당시 합동통신 편집부국장.현 동
아출판사상무)에게 번역을 의뢰했다. 문학사상 에 연재가 시작되면서
조르바와 그의 창조자 카잔차키스는 일거에 유명해졌다. 이후 성프란시
스 등 그의 작품들이 잇따라 번역돼 나왔다.이를 카잔차키스와의 1차
대면이라고 한다면 2차 대면은 8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안정효씨가
영혼의 자서전 을 갖고 고려원을 찾으면서다. 안씨의 번역으로 출간된
이 책은 당시 급팽창하고 있던 교양도서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번역작업이 꾸준히 계속됐다. 안씨와 이윤기씨등 당대의 번역문학
가 두사람이 자웅을 겨루듯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 전집의 값을 높였다
. 이밖에도 목사 김성영씨와 장홍씨등이 번역에 동참했다. 그가 끼친
영향은 넓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매우 깊다. 박영한씨는 19회 동
인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억하마. 카잔차키스 . 그리
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 젊은날의 성서였다 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 최구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