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엔군 첫파병/유엔군-반군 대결 아이디드 민족영웅 부상 소
말리아사태는 아사와 내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태는 지난 69년 군
사쿠데타로 집권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1991년 1월 반군
들의 공세를 피해 국외로 탈출함으로써 시작됐다. 그러나 반군들은 바
레 정권 타도 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자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해 피
비린내나는 내전을 전개했다. 현재 소말리아에는 15개 정파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파와 알리 마디 모하메드파의 양대파벌
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반군들의 내전은 금세기 미증유의
기근과 맞물려 마침내 세계최대의 비극을 낳았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가 그렇지만, 소말리아의 가뭄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소말리아는
지난 80년대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3백만명이 아사위기에 처한 적이 있
다. 그때는 독재정권일망정 중앙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바레 정권의 붕괴로 무정부상태가 계속된 1991년 이
후는 사정이 달라졌다. 3만명파견 사상최다 중앙정부를 타도하기 전
까지만 해도 민심을 얻기 위해 민폐를 끼치지 않았던 반군들은 이제 군
벌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가뭄으로 아사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돕기는 커
녕 외부의 원조물자까지 닥치는대로 약탈해갔다. 이 과정에서 이미 약1
백만명이 굶어죽거나 내전의 희생이 됐다. 작년 한해에만 약30만명이
굶어죽었으며 4백만명이 아사직전에 놓여 있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
자 국제사회도 더이상 소말리아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작년 12월3
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을 소말리아에 파견,
소말리아인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지원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미국은 12월9일부터 2만5천8백명의 병력을 파견, 금년
5월초까지 소말리아 구호작전인 희망회복작전 을 전개했다.희망회복작전
에는 미국을 비롯해 23개국, 총 3만8천여명의 인원이 참가했다. 총
비용은 7억5천만달러에 달했으며 15만t의 식료품과 의약품이 제공됐다
.다국적군은 소말리아 남부와 중부지방을 장악, 이 지역에서는 치안도
회복됐다. 아사위기도 최악의 국면은 넘겼다. 그러나 북부지방에서는 소
말리아민족운동(SNM)이 독립을 선포하고 유엔의 간섭을 거부하고 있다
. 5월부터는 유엔평화유지군이 미군을 대체해 소말리아를 관리 하고
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미국이 유엔측에 자국 병력의
철수를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월26일 소
말리아에 파견된 미군병력을 3만8백명의 유엔사상 최대규모의 평화유지군
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소말리아에 파견된 유엔군 병력은
약1만8천명이다. 아사와 내전으로 규정되는 소말리아사태는 현재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최악의 국면은 벗어났다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소말리아사태를 야기시킨 내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6
월 들어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5일 소말리아 최대의 군벌인
아이디드파는 유엔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 파키스탄군 23명을 살해하
고 62명을 부상입혔다. 아이디드파는 수도 모가디슈의 80%를 장악하
고 있고 남부지방에 근거지를 둔 군벌이다. 아이디드는 희망회복작전에
협조적이었으나 수주일 전부터 태도를 돌변, 소말리아인들이 스스로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엔군은 속히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
다. 유엔군은 아이디드에 대한 보복작전에 나섰다. 12일부터 계속 1
1개국 병력을 동원해 수도 모가디슈의 아이디드파 무기고 및 방송국 등
을 공습했다. 이것은 유엔군의 작전으로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규모의 공
습이다. 그러나 이같은 유엔군의 작전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이
잇달아 발생, 현지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사흘간 계속된 유엔군
의 공습으로 80여명이 사망했으며 13일에는 유엔군 소속 파키스탄군이
유엔군의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 20명이 사망하고 5
0명이 부상했다. 공습-발포로 인식변화 파키스탄군은 이에 대해 정
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으나, 목격자들의 증언 등에 미뤄볼 때 소말리아인
들에게 동료를 잃은 파키스탄군이 격분한 나머지 지나친 처사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분위기의 변화가 있는듯 하다.
희망회복작전이 개시된 이래 소말리아국민들에게 다국적군이나 유엔군은
고마운 존재였으나 최근의 공습과 발포사건 후에는 이같은 인식이 1백8
0도 바뀌었다. 유엔군은 이제 외세 로 백안시되고 아이디드는 상대적
으로 외세에 맞서싸우는 민족의 영웅 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이 오랜만에 해외파병하는 소말리아사태는 이처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유엔의 권위를 존중하고 흔쾌히 파병결정을 내린 한국으로서
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유엔은 탈냉전
시대의 각종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또 유엔은 강대국
들의 각축장 성격이 강하다.강대국들은 자국 이익에 따라 유엔을 존중하
기도 하고 무시해온 것이 사실이다.그런만큼 유엔=선 이라는 등식이
꼭 성립하는것은 아니다.다만 이번 소말리아파병은 군벌들의 발호로 고통
을 받고 있는 일반 소말리아인들을 구호한다는 훌륭한 명분이 뒷받침되는
것은 사실이다. 박영철기자 *어떤 나라인가/한반도 3배면적 GNP
1백70불 "극빈"/영-이지배후 60년 공화국수립 회교 믿어 소
말리아는 아프리카 동쪽끝에 위치한 나라다. 동쪽은 인도양에 면하고 북
쪽은 아든만을 사이에 두고 예멘과 마주보며, 북서쪽 끝은 지부티, 서
쪽은 에티오피아-케냐와 각각 국경을 접하고 있다. 소말리아의 면적은
한반도의 약3배인 63만8천㎢이고 수도는 모가디슈이다. 인구는 기근과
내전으로 1백만명이 줄어든 6백만명으로 추산되며 국민총생산(GNP)
은 10억3천5백만달러(1987년), 1인당 GNP는 1백70달러(1
987년)다. 주민은 소말리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화폐는 소말
리아실링이다. 언어는 소말리어, 아랍어, 영어가 쓰이고 있으며 종교는
회교를 믿고 있다. 기후는 연안성 사막이기 때문에 기온차가 적고,
소말리아의 산맥은 북부지방의 아든만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다. 북
부지방은 사막에 가까운 건조지대이고, 남부지방은 서고동저의 완만한 경
사를 이루고 있다. 1886년 영국은 아든만 연안을 영국령 소말릴랜
드로 만들고 내륙은 에티오피아에 편입시켰다. 1889년에는 이탈리아가
소말리아의 인도양 연안에 보호령을 구축했다. 1936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으로 소말리아는 광대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됐다
. 1960년 6월26일 영국령 소말릴랜드는 독립하고 그해 7월1일에
는 10년간의 유엔신탁통치가 종료된 구이탈리아령과 합병,소말리아공화국
이 수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