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기적이 남긴 인간의 이야기 상상/ 기적의 시간 / 노아의
방주 이후 인류사 이면 그려내/ 10과 ½장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수 없다."( 전도서 ) 기독교의 성서 에 가상의
역사를 덧붙인 서구의 패러디소설이 나란히 번역돼 눈길을 끌고 있다.
유고출신의 작가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간 (열린 책들간)
과 영국작가 줄리안 반즈의 10과 ½ 장으로 쓴 세계 역사 (동연간
)가 현대소설의 대표적 기법인 패러디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패러디
는 인구에 회자되는 고전을 부분적으로 개작, 풍자적으로 비틀면서 새로
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문학기법으로 흔히 창조적 모방 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는 입장에서 모든 문학텍스트는
그 앞에 발표된 텍스트의 창조적 모방 또는 변형 이라는 것이 패러디
문학의 선언이다. 소설가이자 번역문학가인 이윤기씨가 번역한 기적의
시간 은 신약성서 에 나오는 예수의 여러 기적들을 소재로 삼아 그
것의 뒷면을 인간의 시점으로 재해석한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베드로의
회상을 통해 열린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적도, 그분이
베푸신 수많은 기적, 가령 벙어리의 혀를 풀어주시고, 미친 자의 정
신을 돌려주시는 등의 기적이 아닙니다. 왜 그런 기적이 아닌가 하면,
벙어리의 혀를 풀면 고자질하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배신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가 생길 뿐이요.(중략) 그런 기적은 수혜자를 회심하게
한 것은 좋으나 구경꾼들에게는, 하느님을 믿는 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
는 효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시간 은 예수의 기적을 부정
하는 독신의 문학은 아니다. 예수의 기적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 소설은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 에는 예수의 기적이 불행한 인간들에
게 베풀어진 이야기까지만 나온다. 이 소설은 그 기적이후 인간의 이야
기를 상상한다. 기적으로 말문이 트인 벙어리가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화형당하고, 눈을 뜬 장님이 추악한 이 세상을 본 뒤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나병에 걸려 남편과 헤어진 뒤 나병환자촌에서 똑같은 병에
걸린 새 서방을 맞이한 여인이 예수의 기적으로 정상인이 되지만, 주변
으로부터 두 남편을 섬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힌다. 기적 이후의
시간 을 다룬 이 소설은 기독교의 인간학적 해석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 공산정권시절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상황을 풍자한 소설로도 읽힌다. 지
상낙원을 약속해온 공산정권의 사상은 메시아니즘(복음주의)을 정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기적의 시간 에 내포되어 있기 때
문이다. 80년대이후 영국소설의 40대 기수로 손꼽히는 줄리안 반즈
의 10과 ½ 장으로 쓴 세계역사 는 성서 의 창세기부터 패러디한
다. 그 유명한 노아의 방주 에 선택받지 못해 몰래 숨어들어간 밀
항자 의 입을 통해 노아의 이면(이면)이 그려진다. 노아는 신앞에서는
아첨하지만, 방주속의 동물 앞에서는 군주처럼 행세했다는 것이다. 방
주는 감옥선과 같았고, 노아는 심지어 전설속의 동물 유니콘 을 잡아
먹었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같은 반노아 론은 성서
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그 근
원에서부터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창세기 를
허구의 상상력으로 비틀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역사는 첫번째는 비극으
로, 두번째는 소극으로 반복된다"는 헤겔의 말을 인용하면서, 창세기
이후 인류사는 폭력과 이기주의의 충돌을 반복해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소설은 창세기 에 이어 고래뱃속에 들어갔던 요나의 신화, 중세
서양의 종교재판, 인간의 달착륙에 이르는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차례로
뒤집어나간다. 성서에 대한 패러디를 비롯, 기묘한 종교재판의 기록,
노이로제 환자의 독백, 서간체형식의 다큐멘터리등 다양한 서술방법을
혼용하고 있다. 소설과 에세이등 거의 모든 형태의 산문을 뒤섞은 실험
소설이다. 박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