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이 "중국에도 포철 같은 것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자, 일본 사 람들은 "중국엔 박태준이 없다"고 대답했다.이 유명한 일화속의 주인공 이 정작 자기 나라에서 정치를 하다가 망했다. 박태준의 몰락 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과잉 정치만능 정치지향 의 해악을 새 삼 생각케 해준다.
정주영의 패망 과 김우중의 방황 도 바로 그 런 경우다. 그들은 업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평생 권력의 햇볕만을 쏘이다 망한 모모씨들과는 경우가 달랐다. 박태준씨는 특정분야의 국 제 업계에서 위력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세 계 철강업계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의 평상시 관심사도 주로 경제 였다. 그는 제조업은 영원하다 는 일본인의 책을 민자당 의원들에게 읽힌 사람이었다. 일본을 다녀올 때 마다 " 큰일 났다"고 갈수록 벌어지는 한일격차를 걱정하기도 했다. 정주영씨 는 긴 설명이 필요없는 립지전적인 세계기업인이었다. 국졸의 시골소년 이 세계 조선업계, 자동차업계에서 현다이 의 신화를 창조했다. 내일 할 일을 빨리 하고싶어서 잠을 많이 잘 수가 없다 던 그였다. 무서운 돌파력으로 누구나가 불가능하다던 일들을 수도 없이 성공시켰다 . 세계적 규모의 공업도시 울산은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일 수가 없다. 김우중씨는 샐러리맨의 영웅이었다. 신문을 돌리면서 학교에 다녔고, 샐러리맨 생활을 거쳤으며, 독립한 뒤에 수출로 일어선 그는 70년대 달리는 한국인 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와 대우를 잘 아 는 사람들은 "대우라는 기업은 김우중의 일인백역으로 유지되고있다"고 말한다. 천부적인 기업인이 아니고선 들을 수 없는 찬사다. 그런 그도 잠시나마 정치로 방황했다. 특히 정, 박씨는 기업가로서의 정상 에서 만족하지 못했다.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한 것이 있었다. 그들 을 허전하게 했던 것, 그것은 아마도 정치 였던 것 같다. 두사람 만 모이면 정치 를 화제로 삼는 나라, 그 곳에서 그들은 기업가로서 는 TOP이 될 수 없다고 느꼈을까. 지금은 기업가가 나라를 지키 는 장군 이라는 시대, 우리의 탁월한 장군들은 이렇게 국내 정치에 빠 져 개죽음을 당했다. 밖에서 싸우는 명예로운 길을 버리고 권력을 좇 아 안에서 싸운 결과다. 일본엔 박태준 정도의 기업가들이 우글거리 지만 누구도 정치로 패망하지 않는다. 평생을 자동차업에 바친 혼다소 이치로는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누군가가 일본차와 같은 것을 만들어보겠다 고 나섰다면, 일본인들은 "한국에는 혼다가 없지않은가"라고 비웃을 것만 같다. 오늘 한국의 혼다 들은 정치판 에서 죽고 있다. 양상훈.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