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만 해도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
다. 여행을 하려면 상대방 나라의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초청이 있어야
했고 동시에 재정보증이 뒤따라야 여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여권을
받고나면 해외여행에 필요한 외화가 있어야 하는데 상대국 초청자가 모
든 것을 지불한다고 하였으니 여행자가 환전하여 소지할 수 있는 외화는
법적으로 1백달러 뿐이었다. 요사이는 한번에 5천불씩 갖고 여행을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빈약한 국가재정 상태로 보면 당연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나같은 유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고 겨우 1백달러를 들고
나가 공부를 할때에 가끔 일년씩 연수 받으러 오신 분들을 보면 지갑
에 규정이상의 외화가 두툼하게 들어있었다. 이들은 귀국할 때에도 국내
에는 없는 전자제품같은 물건을 사서 여유만만하게 돌아가기도 하였다.
연수생들은 모두 그러려니 하던 중 그중 한 분이 귀국할 때 사는 귀
국선물을 보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꼬깃꼬깃 구겨진 1백달러를 한
푼도 쓰지않고 갖고 계시다가 그 일부로 연필 열타스를 사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연필
을 선물로 산다는 설명이었다. 네자녀에게 한타스씩 주고 친지들에게 나
머지를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선진국의 지하철에 대해 배우러 오신 그
분은 당시 서울시청의 직원으로 공부할 나이가 지났건만 연수시 전 과
목에 우수한 성적을 받아 공부에서도 유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고
위공직자의 재산공개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이분 같이 알뜰하고 청렴한
공직자가 있기에 우리나라가 지금같이 잘 살게 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당시에 그분이 늘 원하던 자신의 꿈과 같이 지금 대부분의 국민들
이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고 가스가 나오는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이러한 공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나는 확신한다. 연세대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