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평단 찬사모은 최근작 9편 수록 소설가 신경숙씨가 두번째
창작집 풍금이 있던 자리 를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냈다. 이 창작집은
지난해부터 평단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던 작가의 최근작 9편을
수록한 것으로, 책이 나오기전부터 평론가들로 부터 90년대 한국소설의
새 희망으로 지목됐다. 창작과 비평 등 3개 계간문예지의 봄호에
작가의 단편이 실렸고, 계간 문예중앙 이 김윤식교수(서울대)와 작
가의 문학대담을 마련하는 등 신경숙현상 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장
편소설의 시대로 불리는 90년대의 문학풍토에서 창작집 풍금이 있던
자리 가 이처럼 집중조명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작 작가 자신은
"제 작품에 대해서는 저도 잘몰라요"라면서 한참 침묵을 지킨 뒤 어색
하다는듯이 웃기만 한다. 말꼬리를 흐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휴지에
빠지는 작가의 침묵에 배어있는 불명료성은 소설의 문체에서 그대로 나
타난다. 풍금이 의 도입부는 그 문체의 특성을 잘 보여주면서 개성
이 강한 문채 를 발산한다. "산은 푸르고 푸름사이로 분홍진달래가
그 사이 또 때때로 노랑물감을 뭉개놓은 듯, 개나리가 막 섞여서는
환하디 환했습니다. 그런 경치를 자주 보게 돼서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곧 처연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걸 보면 늘 슬프다고 하시더니 당신의
그 기운이 제게 뻗쳤던가 봅니다. 연푸른 봄산에 마른버짐처럼 퍼진
산벚꽃을 보고 곧 화장이 얼룩덜룩해졌으니." 작가는 봄날의 환한 풍
경을 언어로 묘사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
기증을 겹쳐놓는다. 화자의 문장은 자꾸만 분절되고, 문법적으로 완결되
지 못한 문장들 사이의 말줄임표 속에서 환한 봄날과 화자의 처연함이
섞여서 언어의 수채화를 낳는다. 배드민턴치는 여자 해변의 의자
등 이 창작집의 다른 작품들도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 지날 때마다 사라져버리는
삶의 흔적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다. 창작집에 해설을 쓴 평론가 박
혜경씨는 "신경숙의 소설들을 통해서 우리가 가슴저린 고통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결국 열정도 사랑도 없는 시간 속에서 무의미한 허우적거림을
계속하는 우리 자신의 메마른 실존의 모습들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