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외판원 "촛불의 삶"/지금도 15명과 "한집살림"/17평 전
세방서 월수입 털어 생활/불구 가족 돌보다 자신도 병얻어 하루하
루 살아가기 바쁜 소시민들에겐 남을 돕는다는 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 17평짜리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외판원 김천일씨(36). 그도
살림살이로만 보면 진짜 가난한 서민이다. 하지만 그는 서울 도봉구 미
아1동 자신의 전셋집에서 갈 곳 없는 정신박약자와 지체장애자,행려병자
들을 돌보며 4년째 함께 살고 있다. 김씨가 샬롬의 집 이라고 이
름붙인 전셋집의 식구는 현재 18명. 김씨 부부와 어린 아들,그리고
15명의 정신박약자 및 지체장애자가 식구의 면면들이다. 김씨의 직장은
달력제작업체인 진흥출판사의 외판원. 노력하면 약 1백7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으나,워낙 대식구라 생활을 빠듯할 수 밖에 없다. 김씨가
이 길을 걷게 된것은 26세 때인 지난 84년6월 직장동료들끼리 축
구시합을 하다 허리를 크게 다친 것이 계기가 됐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던 김씨는 계속되는 병수발을 견디지 못한 친척들의 냉대로 결
국 거리로 나앉게 됐다. 서울 청량리시장에서 쓰레기를 뒤지고,겨울밤
종묘 공원의 벤치에서 새우잠 자기를 6개월. 정신박약이나 지체장애 노
인들이 길가에서 얼어죽는 모습을 숱하게 보아야 했다. "내몸을 낮게만
해준다면 이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원도 철원의 수도원에서 그의 병에 뜻밖의 차도가
왔다. 중국집 배달원 등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현재의 직장을
찾으면서 형편이 나아졌다. 89년11월,김씨는 옛날 다짐대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뒤 다른
다리마저 화상을 입은 채 용산역을 헤매던 김모씨(38),거리에서 구
걸행위를 하던 뇌성마비청년(20),숨지기 직전의 40대 남자 . 이들
을 데려다 정상인으로 되돌려 놓은 김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6개월 뒤 지금의 1천2백만원짜리 전셋집으로 옮겼다. 독실한 기독교
인인 김씨가 지금까지 돌봐준 정신박약자,지체장애자,무연고 노인이나 소
년 등은 모두 45명. 김씨는 그동안 몸을 못가누는 식구 들을 뒷바
라지하다 관절염까지 얻었다. 그러나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유재광
군(21)을 야간학교에 보내기 위해 매일 저녁 7시면 4㎞ 떨어진 학
교까지 휠체어를 밀고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