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파 - 대화파 논쟁할때 지났다 중국도 비핵화 지지 공노명
남북 핵통제공동위 위원장은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미국을 방문했다
. 대외적인 목적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의견교환. 새 정부
출범직후 민족 화해의 차원에서 볼때 핵은 부수적인 것 이라는 등으
로 각종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의 예정에 없던 방미였다. 공
위원장은 귀국후 "북한 핵에 대한 미국정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
고했다"고 설명,양측간의 논의내용을 짐작케 했다. 북한 핵문제는 결코
우리 민족 내부 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국
제적 성격은 국제 공조체제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91년 미-일 기본입
장 정리를 거쳐,러시아 EC 아세안 등이 92년 중반 이에 합류했다.
중국도 거듭 한반도 비핵화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
는 단 하나,한반도 지역에서 핵 보유국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든,아니면 남북한 상호
사찰이든,핵사찰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북한의 핵보유 능력 제거가 이
들의 요구인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 다만 우리 정부만이 남북한 관계 진전이라는 특수이익 을 놓고 고
민해 왔을 뿐이다.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절박
함을 설명하면서 북한에 경협을 제공하고,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키 위해
많은 양보를 하려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국제
공조체제 안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동시에,한국 정부에 대한 경계도 늦
추지 않았다. 남북합의서 미 불만 91년 12월13일,서울은 제5
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채택된 남북합의서 를 놓고 축제분위기였다.
이날 미 국무부 논평은 일단 합의서 채택을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환영했
으나,더 비중을 둔 듯한 꼬리를 달고 있었다. "한반도 긴장완화 단계
들에는 반드시 핵 확산 위협을 중지시키는 조처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
다." 핵문제를 미결의 숙제 로 남겨둔 불완전함에 대한 불만이 담긴
논평이었다. 미국 등의 불만은 그해 12월31일의 남북 비핵공동
선언에서 더 커져갔다. 이 선언 4조에서 사찰대상을 상대측이 선정하
고,쌍방이 합의하는 시설로 정한 것에는 세계 군축사상 유례가 없는
내용으로,북한의 요구를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한쪽이라도 반대하면
사찰은 이루어질 수 없도록 모법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91년 11
월은 북한 핵문제의 처리방안을 놓고 서울이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시기
다. 11월8일 대통령 특별선언 형식의 비핵정책 선언 이 발표됐다.
또 미국의 베이커 국무장관과 체니 국방장관,와타나베 일본 외무장관,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이 서울을 다녀갔다. 각각 공식방문 목적은 달랐지
만,핵심쟁점은 북한 핵개발 저지를 위한 공조 구축이었다. 결과는 만족
스러웠다. 문제는 국제 공조를 호소하고 있던 그때,우리정부가 남북회
담과 북한 핵문제의 연계 여부를 둘러싼 엄청난 내부 논쟁에 휘말렸
다는 점이다. 이른바, 안보파 와 대화파 로 불린 내부 힘겨루기였다
. 외무부 국방부 쪽의 인사들이 주로 주장했던 안보파의 논리는 핵문
제 선행 해결을 전제로 남북회담 동결 이었다. 반면,대화파는 민족적
과제 우선 을 주장했다. 청와대와 통일원쪽의 입장이었다. 이 과정
에서 찾아낸 기묘한 타협점이 2개 경로 (two-track) 논리였
다. 우방국들은 좀처럼 이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별개의
과제로 독립추진의 성격이 강한 병행 (parallel)도 아니고,
둘이 얽매인 연계 (linkage)도 아닌,애매한 내용이었기 때문이
다. 한쪽이 성하면 다른 쪽도 발전하고,한쪽이 쇠하면 다른 쪽도 묶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논리다. 어쨌든 이 논리에 따라 핵문제와는
별도로 남북 정상회담이나 경협제공이 추진된 것이다. 우방과 이견
없어야 북한 핵개발 저지를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구상들을 실현하고 싶은 생
각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구상들이 우방국들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나,이견은 협의 과정에서 조정돼야 하고,
구상이 실행단계에 들어갈때는 이견이 해소된 상태여야 한다. 우방과의
협의과정에서 했던 약속들이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마
음대로 하는 것이 자주 외교는 아니며,결코 통일 한국을 위해서도 바람
직스럽지 않다는 데 귀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