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6%이상 성장 발판삼아 26년 집권/과보다 공많은 "개발독재"
경제 무너지면 국민욕구 폭발 26년간 인도네시아를 통치해온 수하르
토 대통령(71)은 10일 6선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북한의 김
일성주석에 이어 아시아 2위의 장기집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공산체제 중에서도 특수한 체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하르토는
사실상 아시아 1위인 셈이다. 이같은 장기집권을 둘러싸고 국내외의 평
가는 엇갈리고 있으나 대체로 공이 과보다 크다는 긍정적인 견해도 많다
. 많은인구-종족 섬나라 수하르토의 업적은 인도네시아를 가난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점은 그가 금년 1월에 행한
연설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이 연설에서 개발정책을 시작할 당시 1인
당 국민총생산(GNP)은 약 70달러였던 것이 지금은 6백달러가 넘으
며 연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큼 고
도성장을 이룬 나라는 최근 4반세기 동안 1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고
자랑하는 것도 잊진 않았다. 경제성장과 함께 영토도 확장했다. 19
69년 인도네시아는 뉴기니의 서반부를 합병했다. 현재 이리안 자야
로 불리는 곳이다. 또 76년에는 전 포르투갈 식민지인 동티모르섬이
인도네시아 영토에 추가됐다. 인도네시아는 복잡하고 거대한 나라다.
인구는 1억8천3백만명으로 세계 4위의 대국이다. 세계 제일의 섬나라
이기도 하다. 무려 1만3천6백77개. 종족과 종교도 복잡하다. 수하
르토가 이런 나라를 26년간 이끌어왔다는 것은 그의 통치술이 만만찮다
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는 6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체인구의 8
8%를 차지하는 회교도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지난 90
년부터 친 회교정책으로 1백80도 노선전환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기
여했음은 물론이다. 수하르토의 국가경영은 군부독재로 분류할 수는 있
지만 독특한 면이 많다. 그는 다른 군사정권과는 달리 군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군부를 주된 권력기반으로 삼
았으나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서 차츰 그는 불가침의 권위를 쌓
아나갔다. 집권 후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수하르토의 권위는
아무도 도전할 수 없게 됐다. 군부도 그의 수족에 불과하다. 그는
그밖에 관료,재벌,종단,정당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90년부터
친 회교정책 수하르토는 지난 65년 육군 예비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 기도를 분쇄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수하르토를
만들었다. 그는 다음해 실권을 장악하고 68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수하르토를 6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협의회(MPR)는 명목상의 최
고 입법기구로,인도네시아판 통일주체 국민회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기
구는 5년에 단 한번 2주간 소집된다.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고 5
개년 경제개발계획 등 국가정책의 일반지침을 승인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다. 수하르토는 이번 대회에서도 단독출마했고 만장일치로 6선 대
통령에 선출됐다. 이것이 수하르토가 MPR 대의원의 60%를 지명하는
현행 제도상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그의 앞날이 온통 장미빛인 것
만은 아니다. 우선 그의 나이가 문제다. 이번 임기가 만료되는 98년
에는 그는 76세가 된다. 아직 그의 건강은 좋은 편이지만 그때 가서
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경제는 앞으로도 수하르토의
장래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수하르토가 이만큼 권좌
에 남아 있는 비결도 알고 보면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이 전
부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그동안 억눌려온 국민의 민주화
욕구가 화산처럼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수하르토가 이룬 경제성
장 덕분에 인도네시아 국민의 정치의식은 높아진 상태인 것이다. 관료
-재벌-종단 장악 후계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수
하르토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 집권 5기동안 매번 후계자격인 부
통령이 바뀌었고 이번에도 트리 수트리스노 전 육군 참모총장이 새로 부
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수하르토가 7선에 도전할지 아니면
수하르토의 뒤를 이어 수트리스노 부통령이 대권을 승계할지도 불명확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