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시선 따가워 잠 제대로 못잤다 제74주년 3.1절 하루 전날인
28일 오후에도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의 후손 재산몰수 특별법제정
을 촉구하는 시민대회가 서울에서만 두군데서 열렸다. 같은 시각 이의
증손자이자 조상땅찾기 소송당사자인 이윤형씨(59.건축설계사)는 시내
모호텔에서 본지기자와 4시간동안 만나 "앞으로 증조부의 땅을 되찾게
된다면 순수 조상묘지를 제외한 땅은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꺼칠한 표정의 이씨는 또 증조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즉답은
피한 채 "역사의 준엄한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가
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증조부 이완용의 땅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는.
"캐나다에 살던 90년 당시 검찰이 국제전화를 걸어 서대문구 북아현
동의 조상땅 7백여평을 판 적이 있느냐 고 물어와 깜짝 놀랐다. 그후
증조부 땅의 소유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토지브로커들에게
넘어간 것을 알고 조상묘라도 찾겠다는 심정에서 나왔다." -지금껏
몇건의 소송을 얼마나 냈으며 되찾았는가. "직접 소송을 낸 것은 1
0여건이다. 나머지는 토지 브로커들의 장난같다. 현재 1심에서 승소한
것은 6건(2천여평)이지만 완전히 되찾은 것은 아니다." -증조부
이완용과 부친 병길씨가 남긴 유산은 얼마나 되는가. "선산위치를
기록한 족보와 집안어른들의 증언을 근거로 전국에 수백만평이 산재돼 있
다는 것만 막연히 알뿐이다. 그중 일부는 종진회,국가,재산관리인의 소
유로 이전된 것을 알지만 대부분 정확한 번지를 몰라 어떤 땅인지 확인
하지 못했다." -매국의 대가로 산 땅을 그 후손이 어떻게 뻔뻔스럽
게 되찾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많은데 . "소송을 낸 사실이 보도된
후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며 밤잠도 제대로 못잤다. 소송의 파문
이 잃게 클 줄 몰랐다. 집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이완용을 어떻게 보나.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며)어릴때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아 괴로웠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에 맡기겠다."
-3.1절을 맞은 심정은. "지금까지 가슴 조이지 않고 3.1절
과 8.15 광복절을 맞이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3자나 8자만 봐
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앞으로의 계획은. "증조부의 땅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 필요한 자료를 공개하는 등 적극 협조하겠다. 평범
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고 싶다."